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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종은 주인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왕상 2:1~6)

204호 · 2004-01-20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토끼 사냥이 끝나면 개를 삶아 먹는다’라는 뜻으로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는 경우에 쓰이는 말입니다. 필요 이상의 가치가 없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마치 일회용 컵에 비길 수 있습니다. 일회용 컵은 야외에 나갈 때 꼭 필요한 것이나 사용 후 반드시 쓰레기통에 버리고 옵니다.

물건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사람이 왜 쓰임 받다 버림을 당할까요? 이는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종은 의지가 없습니다. 주인의 말과 명령이 곧 행동지침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장면은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여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왕권을 넘기며 유언하는 대목입니다. 그 중 스루야의 아들 요압에 대한 다윗의 당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말합니다.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요압은 다윗 생전 나름대로 충실한 장군이었습니다.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 했으며, 전쟁에 일등공신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다윗의 당부는 너무나도 부당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 다윗은 요압에 대해 이런 말을 했을까요? 요압은 출중한 장수였으나 다윗왕의 마음을 여러 번 아프게 했습니다.

과거 사울의 총사령관이었던 아브넬이 다윗에게 화친을 청하러 왔을 때 다윗은 그를 신임하고 후대하여 돌려보냈는데, 이 때 요압은 시기심으로 말미암아 아브넬을 뒤쫓아가서 암살했습니다. 또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이 비록 반역을 저질렀지만 죽이지 말라고 호소했는데 이를 묵살하고 상수리나무에 달린 압살롬의 심장을 찔러 죽였으며, 이 일로 총사령관 자리가 아마샤에게 넘어가자 또 그를 암살하고 그의 자리를 빼앗았습니다.

다윗은 그 때마다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으나 요압에 대해서 함구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왕통을 잇는 시점에, 자신의 임종을 앞두고는 요압을 처단할 것을 명령한 것입니다. 요압은 왕의 평생에 필요한 사람이었으나 다윗의 마음에 합한 자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가장 충성된 종이 누구입니까? 제 스스로 일을 알아서 척척 하는 자 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충성된 종이란 주인의 말에 순종하고 주인의 마음을 알아 그에 합하게 행하는 자입니다. 그런 자를 주인은 마음에 두며,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다시스로 갔습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간 데에는 요나 나름대로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앗수르인들의 잔악무도한 행동을 하나님이 용서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니느웨로 가서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은 곧 원수를 이롭게 하는 것으로 민족감정상 도무지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스로 도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가 알지 못했던 사실은 하나님의 명령 앞에 자신의 생각이 무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종은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요나는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용서치 않으시고 물고기 뱃속에 가둬 회개시키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습니다. 다윗이 평생을 살면서 죄와 무관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도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을까요? 다윗은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했습니다. 그는 까닭 없는 사울의 시기심에 희생되어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몇 번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그는 기름 부은 자를 죽이는 것이 하나님께 합당치 못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기회를 버렸습니다. 나중에 사울을 죽인 자를 포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물어 죽였습니다. 사심으로야 마땅히 사울을 죽인 자들을 포상할 수 있었을 것이나, 그는 미천한 자신을 왕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종으로서 자신의 본분을 지켰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오묘막측하신 뜻을 다 알지 못합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 고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20)고 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니요’가 아니라 오직 ‘예’ 뿐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바른 관계입니다.

세상에서도 상사의 마음을 헤아려 그 뜻에 따르면 승진합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엡6:1). 상사의 마음을 이해하고 순종하면 상사의 눈에 들게 되어 있으며 이로 인하여 승진하고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뜻과 계획에 반하여 행동하는 부하 직원을 그대로 둘 상사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외교부 수장이 경질된 사건으로 말이 많지만, 사실 대통령의 뜻에 어긋나는 발언이나 행동으로 외교정책의 기조를 흩트리고 있다면 경질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정책의 판단이나 집행에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국민이 위임한 최고 권력자의 뜻에 반하는 자가 있다면 그와 더불어 일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당연히 대통령 자신의 뜻을 정책에 잘 반영하여 집행할 수 있는 자로 교체하는 것이 마땅하며 그에게는 그런 권한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활에 접목되어야 합니다. 가정은 주종의 관계는 아니나 남편이 아내의 마음을 알아 마음 상하는 일을 안 한다면, 아내가 남편의 마음을 읽고 세심한 배려를 한다면 가정에 무슨 문제가 발생하겠습니까? 우리나라 이혼율이 세계 1위랍니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는 아량과 지혜가 있다면 이런 불명예스러운 1위는 탈퇴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행하고, 부모 역시 자녀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문제가정, 문제아가 왜 생기겠습니까?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아셨기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고백하셨던 예수께서 직접 하나님과의 옳고 바른 관계를 우리에게 본 보이신 것입니다. 또 빌레몬이 그의 스승 바울의 뜻을 따라 오네시모를 받아들인 것으로 스승과 상사에 대한 관계를 잘 지적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뜻은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순종하며 가다보면 점차 이해의 폭이 넓어지며 이해의 깊이가 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찌 1층에 있는 자가 10층에 있는 자를 이해할 수 있으며, 7부 능선에 선 자가 정상에 선 자를 알 수 있겠습니까?

쓰임 받다 버림당하는 자들이 되지 맙시다. 쓰임새 때문에 존재하는 불쌍한 자가 되지 맙시다. 그런 자의 최후는 요압과 같이 되고 맙니다. 쓰임새가 없으면 버리는 것입니다. ‘필요하기 때문에 옆에 있어 달라’는 사람이 되지 말고 ‘사랑하기 때문에 있어 달라’는 사람이 됩시다. 하나님이 당신 없이는 살맛이 나지 않고,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가 되어 그의 사랑과 신뢰를 듬뿍 받아봅시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고, 그의 뜻에 역행하지 말고, 그 분의 생각에 대적하지 않는 종이 됩시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란 하나님의 칭찬을 사모하며 달려갑시다. 훗날 당신을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 하실 것입니다.

종에게는 의지가 없다 오직 순종만이 있을 뿐이다

7부 능선에 멈춰 있는자가 어찌 정상의 맛을 알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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