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이기려면 백전노장의 말을 들어라 (갈 1:1~24)
옛말에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축적된 경험이 무엇보다 삶에 유익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경험이란 학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실전(實戰)으로만 얻을 수 있는 현장체험입니다. 탁상공론으로는 현실을 주도할 수 없습니다. 고(故) 정주영 현대회장의 경영방침이 한 대학에서 ‘실전형 경제론’으로 강의되고 있습니다. 그는 경영학을 전공한 경영학자는 아니었으나 누구보다 경영에 탁월한 자였고, 현장에서 직접 부딪쳐 얻는 경험이 여느 경영이론을 앞질렀기 때문에 채택되어진 것입니다.
‘전쟁 중에 길을 잃었으면 오래된 말을 타라’는 말이 있습니다. 명 판결을 원하면 노회한 법관을 찾아야 하고, 명쾌한 진료를 원하면 오랜 명의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백전노장의 말보다 더 나은 병법은 없습니다. 경험을 능가할 지식은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터에서 학문을 논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인 경험들이 진정 최고의 병법입니다.
우리는 전쟁 중입니다. 휴전(休戰)도 아니고 종전(終戰)도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 보이는 것과 싸우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와의 싸움은 내 지식이나 지혜로는 불가능합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경험이 많은 백전노장을 만나야 합니다. 그는 경험한고로 승리의 비결을 터득하고, 난관을 타개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백전노장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자가 모세입니다. 애굽에 포로가 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끈 모세는 40년 광야세월을 지내면서 백전노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수많은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 터득한 비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생각과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 군대로 사면초가였을 때 그는 다른 방법을 강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갔습니다. 그것이 경험이 되어 물이 없을 때도, 먹을 것 때문에 이스라엘민족이 아우성을 칠 때도 오직 이 방법대로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최후 승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백전노장인 모세의 말을 들은 여호수아는 여리고를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을 무시하다가 작은 아이성에서 참패를 당했습니다. 성공한 자의 방법대로 가면 성공하게 되어 있고, 실패자를 따라가면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승리하고 영원한 세상까지 가는 최후의 승리를 보장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는 전지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가르침을 배우고 행하면 영. 혼. 육에 완전한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전쟁에 2등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전쟁이 2등이란 곧 죽음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영적인 삶 속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론 세상적인 방법이나 인간적인 방법이 우리를 유혹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최선책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후 승리의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
예수의 말씀만이 왕도이며, 최선책인 것입니다.
한신 장군이 10만 대군으로 100만의 항우를 물리친 것은 바로 배수진 작전에 있었습니다. 배수진이란 퇴로가 차단된 절체절명의 작전입니다. 앞으로 나가 싸워 이기지 않으면 수장(水葬)되어 죽을 수밖에 없는 사지(死地)로 몰아넣음으로써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조직적인 정신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전법인 것입니다.
영적 무장이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됩니다. 우리는 너무 신앙적으로 나태해져 있습니다. 악한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있는데 우리는 무방비 상태입니다. 해이해진 신앙,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믿음으로 타협하는 적당주의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이를 하나님은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6).
전쟁에 지면 죽음뿐입니다. 영적 싸움에 지면 악한 마귀의 종이 되고, 우리의 영. 혼. 육에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배수진을 쳐야 합니다. 오직 전진만이 우리의 살 길인 것입니다.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지는 자는 결코 승리의 감격을 맛보지 못합니다. 예수께서도 ‘죽고자하면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
에스더는 뒤로 물러날 곳이 없었습니다. 풍전등화의 이스라엘 민족을 살릴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금식하며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갔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믿음이 있어야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백전노장은 군사들을 쉬게 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어떤 장군은 그동안 말이 너무 힘들었다면서 쉬게 했고, 다른 장군은 도르래 위에 말의 앞발을 올려놓게 하여 계속 달리게 했습니다. 이것을 본 주위사람들이 그 장군을 향하여 ‘아무리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이건 너무 잔혹한 짓이 아니냐?’ 며 야유했으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몇 달이 흐른 뒤 다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몇 달을 쉰 장군의 말은 도저히 속력을 내지 못하더니 결국 적군의 포로가 되었으나, 계속 달렸던 장군의 말은 쏜살같이 전쟁터를 달려 많은 적군을 죽이고 그 장군은 승리자로 금의환향했습니다. 신앙에는 쉼표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완전한 승리가 주어질 때까지 우리는 훈련해야 합니다. 훈련 가운데 있습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훈련 가운데 두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게 되면 훈련이 고되다고 푸념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교의 훈련은 병의 훈련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은 법입니다.
당신 인생이 실패했다면 이제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의 발자취를 따랐으며,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며, 어떤 자세로 살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세상적인 지식을 탐했고, 인간적인 방법대로 행했으며, 적당히 타협하는 신앙인은 아니었는지 마음을 여미고 회개할 때입니다.
성경에 많은 믿음의 선친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복을 얻고 승리한 것을 보십시오. 반대로 말씀을 거역하고 역행하여 삶에 낭패를 당하고 고통 가운데 살았던 자를 보십시오. 성경은 우리의 거울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나를 조명해보고 재정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아 마치 하늘과 땅의 높음 같습니다. 그 분을 의지하고 따라가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요, 승리하는 길이며, 복 받는 길이며, 영생을 얻는 비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축복과 건강과 영생이 있습니다. 안식과 평안이 있습니다. 그 분을 따라 갑시다. 그 길이 비록 좁은 길일지라도 오직 참된 길인 것입니다. 평안하고 넓은 길이 절대 옳은 길이 아님을 유념하십시오. 할렐루야!
전쟁에는 차선책이 없다 오직 전진만이 살 길이다
전쟁에 2등이란 없다 죽고자 하면 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