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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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對話)와 독백(獨白)

195호 · 2003-11-20

겨울에 쫓기는 듯한 늦가을의 하늘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구름이 흘러가는 곳을 따라나서느라 마음이 부산을 떤다. 아무도 들어 주지 않는 이야기를 홀로 뇌까리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말, 대답이 없는 이야기, 이것을 사람들은 독백(獨白)이라고 한다. 독백이란 왠지 외롭고 허전하고 눈물나도록 시린 뉘앙스가 그 안에 있다. 메아리 없는 외침 같은 것, 공허함으로 사방을 웽웽 울릴 것 같은 고독함이 서려 있다.

말은 주고받아야 그 맛이 있다. 그것이 대화다. 던지면 받고, 때론 치기도 하고, 때론 나누는 것이 말의 묘미다. 들어주는 자가 있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말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것이다. 심혈을 기울인 그림을 감상해 줄 누군가가 있다면 그 자체가 행복이다.

흔히 기도를 독백(獨白)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저 공중에 대고 혼자 푸념하는 것처럼, 속이나 털어내자고 하는 혼자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도는 대화요, 고백(告白)이다. 분명히 들어주는 이가 있는 진지한 대화다. 귀를 열어 들어주시는 이가 우리에게 있다. 내가 아픈 이야기를 하면 그 분은 내 아픔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시며, 내가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하면 그 분은 고통으로 신음을 하시고, 내가 기쁘고 즐거운 이야기를 하면 그 분은 행복에 겨워 흥얼대신다.

세상이 내 이야기에 관심조차 없을 때, 그 분은 내 이야기를 들으시려 나를 늘 기다리고 계신다. 언제, 어디서든 나와 대화 나누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가 시련과 고난 가운데서도 충분히 행복한 이유가 이것이다.

기도는 공중에 분사하는 것이 아니다. 허공을 치는 것도 아니다. 분명 들어주셔야 할 이가 들어주시는, 방향 있고, 상대가 분명한 대화다. 아무에게나 고백한다고 사랑이 이루어지는가!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해야 이룰 수 있듯이, 해결해 줄 능력이 있는 그 분이 우리의 말벗이 되신다. 우리가 당당한 이유가 이것이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고 있는가? 기도할 수 있는데 왜 낙담하고 있는가? 듣고 해결해 주실 이가 당신 곁에 있는데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가? 그에게 말하라. 그가 이루시리라. 입을 열어 그에게 구하라. 그가 주시리라. 기도하라. 그가 기다리고 계신다. 홀로 있다고 외로워하지 말고 그 분과 나직하게 대화를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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