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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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너에게 맞는 적성에 주력하라 (마13:44-52)

194호 · 2003-11-13

‘열두 가지 재주 가진 놈 저녁거리가 없다’라는 옛 말이 있습니다. 또는 다른 말로 ‘너저분한 밥상에 젓가락 갈 곳이 없다’고도 하는데 이는 전문성, 곧 달란트에 관한 말이기도 합니다.

바로 얼마 전에 수학능력시험이 있었습니다. 수십만 명의 대학입학 후보생들이 대대적으로 시험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올해도 그 과정에 역시 불미스런 일들이 나타났습니다. 한 여학생이 시험 도중 나가 투신자살한 사건입니다.

왜 그 학생은 아직 피지도 못한 나이에 세상을 등져야 했을까요? 그것도 가장 비참한 방법을 택하여 말입니다. 그를 그토록 버겁게 했던 대학진학이 과연 그 학생의 뜻이었을까요? 사회적 구조가 그 학생을 18층 아파트에서 밀어낸 것은 아닐까요? 더는 부모의 과도한 요구가 어린 자녀에게 큰 짐이 되지는 않았을까요?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일이 있습니다. 이를 적성(適性)이라고 합니다.

억지 춘향은 정말 힘든 것입니다. 내게 맞지 않는 일은 마치 맞지 않은 신발을 신은 격입니다. 몇 년 전, 어렵게 사는 한 성도가 저에게 신발을 사 줘서 그 신발을 신고 일본 집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신발이 제게 맞지 않았나 봅니다. 조금 걸으니 발이 부르트고, 물집이 잡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신발을 벗고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이란 이와 같아서 인생을 매우 힘들게 합니다. 아무리 남들 눈에 좋아 보여도 그것이 내게 맞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신발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제가 캐나다 집회를 마치고 하루 여유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침 주최측에서 골프를 치자고 제안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준비가 없던 터라 골프화를 사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골프샵에 들어가 이것저것 신발을 골랐습니다. 금장이 달린 가죽 신발부터 으리으리한 신발들이 많았습니다. 저의 회원들은 “목사님, 제일 좋은 것으로 사세요.”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쪽 귀퉁이에 있는 저렴한 운동화를 택했습니다. “목사님, 돈 걱정 마시고 저기 있는 금테 달린 것으로 사세요.” 라며 성화인 회원들에게, 저는 일본에서 고생했던 이야기를 하며 “가장 좋은 것이란 내게 맞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못하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좋은 직업이나 지위라도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오히려 짐이 되고 버겁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마다에게 맞는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달란트대로 행해야 기쁨이 있고, 만족이 있고, 신바람이 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눈은 눈의 위치와 일이 있고, 발은 발의 위치와 일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발이 보기에 눈의 위치와 일이 탐하여 거기를 차지했다고 합시다. 생김새나 그 꼴이 얼마나 우습겠으며, 발이 얼굴에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왜 사람들이 자기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고생하는 줄 압니까? 그것은 남의 눈치를 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니까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남이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는 일로 과연 행복한지, 불행한지 먼저 생각해본다면 내게 맞는 일을 찾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래 등 같은 집에서만 행복이 납니까? 아닙니다. 방한 칸에도 행복은 있습니다. 내게 주신 천직을 찾아야 인생이 행복하고 신바람 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게 맞는 것이 꼭 있습니다. 옷도, 머리 스타일도, 그리고 배필도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짝이 없는 것이 없듯이, 세상에 짝이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사업의 동지도 반드시 있습니다. 찾지 않기 때문에 없는 것이고, 조급하기 때문에 안 맞는 것을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있느라 고생하는 것입니다.

요새 체질에 맞는 음식이 건강에 좋다고 하지 않습니까? 무턱대고 먹으면 오히려 몸을 망치는 수가 있답니다. 세상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이 입으니까, 유행이니까 하고 따라서 입는 옷은 잘 생긴 얼굴을 무녀리로 만들 수 있고, 그저 순간 감정으로 결정한 배필로 인해 서로 고생하다 헤어지는 아픔을 겪을 수 있고,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메다 같이 넘어지는 수가 있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후6:14).

옷장을 한 번 들여다보세요. 입자니 입을 수도 없는 것이 옷장 안에 잔뜩 있을 것입니다. 이는 맞지 않는 옷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업장도 한 번 돌아보세요. 사람은 많으나 일의 능률이 제로(0)인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일당 백, 일당 천하는 전문 정예인력으로 일의 능률화를 이룰 수 있는데 그 사람을 택하지 않은 연고입니다.

된장 찌개하나로 저녁 밥상이 근사할 수 있다니까요? 너저분한 밥상보다 산뜻한 메뉴하나가 낫다는 것입니다. 가짓수가 많으면 수고도 그 만큼 가일층되고, 소비만 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에 열 유사(有司)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전7:19)고 한 것입니다. 쓸만하고 마음에 맞는 인재 하나면 된다는 것입니다. 입맛에 맞는 반찬 하나로 인생이 맛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인생이 고름이 나고 물집이 잡혀 아픈 것은 당신에게 맞지 않는 길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지금 바로 잡지 않으면 당신은 그것에 눌려 평생 힘들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자기 보화를 다 팔아 감추인 보화를 산 이야기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큰 물고기만 모으는 지혜로운 자의 이야기 나옵니다. 이는 천국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세상에도 접목시키면 인생이 천국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 혼, 육이 잘 되기를 바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행하지 않으면 성경은 그저 생명력이 없는 그저 글자에 불과하게 됩니다. 성경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 성경의 말씀대로 행할 때 성령이 우리와 함께 역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책이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움직일 때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이는 율법이든 복음이든 이 모든 진리를 적절한 때에 활용하라는 말씀입니다. 알고 행하지 않는 지식은 지식 창고에 불과합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며, 흐르지 않는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행동하는 지식인이 참 지식인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행하면 그동안 짓눌렸던 삶이 해방될 것이며, 진정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녀를 부모의 대리만족의 도구로 사용하지 말고 그들에게 맞는 일을 찾도록 도와 주십시오. 그리고 당신 자신도 천직, 곧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보십시오. 한 때 대기업 부회장을 지낸 서상록씨가 호텔 웨이터가 된 것을 알지 않습니까! 그는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당신에게 맞는 것이 반드시 준비되어 있습니다. 제 밭에 뿌려진 씨가 열매를 많이 맺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오늘 결단하고 변화하는 복된 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너저분한 반찬은 밥상만 버린다 자신 있는 한가지 사업에 집중하라

평생 직장은 없으나 평생 직업은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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