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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명창이 되라
186호 · 2003-09-18
인체 구조상 귀는 두 개요, 입은 하나로 되어 있다. 이는 필경 균형적인 차원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이 듣되, 말은 더디 하라는 심오한 뜻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듣기에는 소홀하고 말하기만을 즐긴다. 이는 귀가 하나요, 입이 두개인 비정상의 몰골인 것이다.
들어주는 것이 능력이다. 상담학의 기본이 바로 듣기라고 한다. 그 안에 답과 해결책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명의는 침통을 바로 잡지 않는다. 오랜 진맥 후에 처방을 쓴다. 섣부른 진단은 오진(誤診)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귀명창이 명창’이다. 잘 듣고, 많이 들어야 판단이 바로 서며, 제 소리를 듣게 되고, 옳고 그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대인은 귀가 크다고 했다. 이는 크기의 대소가 아니라 경청하는 마음자세를 가리킨다.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말이 조급하면 실수를 낳고, 말이 많으면 헛된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귀가 큰 자는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고, 남이 듣지 못하는 소리도 감지해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호소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들어줄 사람이 없다. 말로 위로하는 것은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는 격이나 들어주어 속을 후련케 하는 것은 상처 위에 연고를 바르는 것과 같다. 근본을 치료해 주는 격이다.
귀를 크게 열어라. 그래서 많은 것을 담아라. 믿음도 들음에서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