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위에서 만난 하나님
2002년 11월 14일. 49년 동안 살아온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정말 수술이라는 낱말 자체를 처음으로 실감했고 체험한 날이기도 했다. 위암선고를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며칠은 그저 그런 마음으로 초연한척, 태연한척, 믿음이 대단한척 위선을 떨었다.
그러나 막상 수술하는 날이 되자 몸에 있는 털을 제거하는 제모제를 몸에 바르고 관장을 하고 혈압을 다시 재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데 나의 맥박이 조금씩 빨라짐을 느꼈다. 그러나 가족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하며 수술용 행거를 타고 병실을 나와 수술 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차라리 엘리베이터가 멈췄으면... 수술실로 향하는 행거 위에서 나는 주님을 불렀다. ‘주님, 살아계신 줄 압니다. 할 수 있으시니 지금 내게 오셔서 나를 잡아주세요. 혼자는 싫습니다. 정말 이 순간 당신과 함께이라야 되겠습니다.’ 간절히, 간절히, 정말로 간이 저리도록 기도를 드렸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수술용 침대로 옮겨졌다. 눈을 감았다. 국립암센터 수술실은 참 추웠다. 눈을 떠보니 바로 위에 둥그렇고 커다란 수술용 전등이 환하게 빛을 발하며 비추고 있었다. TV에서나 보던 그 전등이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순간 두려움이 나를 엄습해 왔다.
양쪽 팔목과 발목으로 차가운 이물질이 붙여지고 입고 있던 가운이 벗겨짐을 느끼면서 다시금 애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불렀다. ‘하나님, 제가 당신을 사랑했던 거 아시지요? 아직 할일이 있음도 아시지요? 저를 필요로 할 곳이 한 곳이라도 있다면 저를 기억해 주시옵소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 저를 기억 하시고 오늘 저의 수술을 집도하시는 박사님을 도와 친히 담당해주시옵소서.’ 눈물이 흘렀다.
누군가 따뜻하게 안아주는 온기를 느꼈고, ‘주무세요.’ 하는 소리와 함께 죽음의 시간 속에 머물렀다. ‘힘을 내자! 희망을 갖자! 포기하지도 말고, 절망하지도 말자!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신데 무엇이 두려우랴! 분명 나를 도우시리라!’ 기도할 때 누군가 나를 감싸 안으며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는 음성과 함께 나는 마취라는 죽음의 늪에서 8시간을 머물다 돌아왔다.
위(胃)의 80%를 잘라냈다. 이제 다시 태어나 새 삶을 산다는 마음과 설렘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6.25 동란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했던 IMF, 그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실직되고 해고되고 감봉되고 부도를 맞고 취업이 불가능하게 되었었다. 그런데 지금이 그때보다 더욱 심각하고 어렵다고 한다. 우리 가정도 역시 사업을 하는 남편이 2000년도에 1억 8천이라는 부도를 맞았었다. 어려움을 모르던 우리는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고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교회에 나오기 전에는 ‘이초석이한테나 가라’고 나를 핍박하며 따귀를 때린 남편이었다. 그렇게 인고(忍苦)의 시간 속에서 생을 살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회개의 눈물로 강을 이루게 하시며 옛일을 기억나게 하시는데, 그 옛날 처녀 때 금식대성회에서 서원했던 기억(신학)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스치는 게 아닌가? 어쩌면 그렇게 잊고 살 수가 있을까? 나의 못된 고집, 아집, 교만, 위선을 죽이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 이렇게 길었나보다.
이제 기억하지 못했을 때는 몰라도 알고 나서는 어쩔 수 없었다. 상당히 부담스러웠지만 결국은 약속을 지키기에 이르러 올해 본교 신학으로 편입하였다. 정말 부족하지만 기도하며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제 병상의 휴식을 끝내고 힘찬 내일을 향해 열심히 달려갈 것이다. 병상에 계신 성도 여러분! 이런저런 이유로 고통 중에 계신 성도 여러분! 좌절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주님이 준비해두신 축복을 바라보세요. 죽음의 그림자가 눈앞에 아른거리더라도 여유를 갖고 주님을 바라보세요.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주님은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