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에 나는 제대로 서 있는가 (느3:28 ~32)
급한 용무로 기차를 타게 되었는데 좌석이 없어 입석표를 갖게 되었다고 해봅시다. 우선은 빈자리가 있어 거기에 앉았다 하더라도 그 자리가 얼마나 가시방석인가는 경험자라면 누구나 다 알 것입니다. 정거장에 기차가 설 때마다 자리의 임자가 나타날까봐 조바심을 내게 되고, 결국 좌석표를 가진 사람이 오면 아무 말없이 일어나 줘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가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자리, 사회적인 자리,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를 잘 지키고, 그 자리에 주어진 역할을 잘 이행할 때 마찰이 없으며 그 단체가 구성력을 가지고 발전하고 부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기계에서든 부품이 제자리에 있어야 기계가 잘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아주 미세한 부품 하나라도 빠지면 기계가 삐거덕대거나 돌아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는 나름대로 다 중요합니다.
특히 교회 내에서의 직분이란 어느 것이 크고, 작고 혹은 귀하고 천하고의 개념이 아닙니다. 교회에서의 직분은 받은 은사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목사로, 전도사로, 조장이나 성가대원 또는 안내위원으로 일하는 것은 은사대로의 분담을 뜻하는 것이지 결코 일의 비중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달란트대로 자리를 잡아 충성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올림픽의 인기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나 비인기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나 메달의 가치가 같은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인기 종목인 수영에서 딴 금메달이나 비인기 종목인 필드하키에서 딴 금메달이나 같은 값어치를 하는 것처럼, 교회 내에서 드러나 일하는 것이나 은밀히 행해지는 것이나 다 중요한 것입니다. 누가 그 자리에서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 충성했느냐로 금(金)·은(銀)·동(銅)메달이 결정되는 것이지 자리 자체로 급수를 매기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만일 다 목사하면 성도는 누가 합니까? 다 성가대원하면 안내는 누가 서며, 헌금은 누가 걷습니까? 또 장애인 봉사위원이 없으면 장애인들은 누가 돌봅니까? 이가 저보다 낫습니까? 아닙니다. 다 각자의 자리에서 충성해야 교회가 제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직분에 관한 것을 우리 몸에 비유했습니다. 우리 몸은 많은 지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입이 있어야 말을 하고 음식도 먹습니다. 그리고 귀로 듣고, 손으로 일을 합니다. 발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체가 서로 우열을 가리고 차등을 두려고 다툰다면 우리 몸은 매일 몸살을 앓을 것입니다. 우리 몸의 각 지체가 연합하여 하나될 때 온전한 육체요, 건강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이 중 하나가 아프면 온 몸이 아프게 됩니다. 손가락에 가시 하나만 들어가 보세요. 온 몸이 쑤시고 아프지 않습니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는 그의 각 지체입니다. 만일 우리가 분쟁하고 마음이 나누인다면 교회의 몸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편치 않게 됩니다. 교회에서 모든 자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협력하여야 교회가 부흥하는 것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충성하면 하늘의 아버지가 이를 보시고 행한 대로 면류관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또한 주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일은 다 주님의 일입니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예수 이름을 걸고 열심을 다해 자기의 직분에 충실한다면 그것 역시 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잘못 아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내에서 하는 일만이 주의 일이라고 생각하여 세상에서는 대충 대충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인식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주의 자녀된 자리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의 자녀는 상전에게는 성실한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하듯 충성하며, 가정에서도 제 본분에 맞는 일에 충성하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6장에 기록된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느헤미야가 훼손된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재건할 때 그를 도와 일한 자들의 명단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문을 만들고, 어떤 이는 자물쇠와 빗장을 달고 등등 그들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의 일이 더 큰 비중으로 하나님께 더 합당했고, 어떤 이의 일이 성벽 재건에 더 공헌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성벽을 건축하는 데 모든 일이 다 똑같이 중요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맡겨진 일은 일의 가치면에서 동등했고 공평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3장 20절에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하여’ 라고 기록된 것이 다른 점입니다. 이 ‘바룩’이란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과 성을 다하여 일을 했나 봅니다. 충성의 정도는 달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느헤미야가 놓치지 않고 본 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나중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면 우리의 행적이 이처럼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우리의 기록장에도 ‘힘써’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잠시의 방심이 없으며, 자그마한 오차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은밀한 곳에서의 충성도 기억하시는 분입니다.
지금 당신은 당신의 자리에 서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를 박차고 세상으로 나아가 남의 자리에 앉아 좌불안석(坐不安席)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의 자리로 돌아오세요. 내 자리에 앉아야 편한 겁니다. 세상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당신의 자리 이탈은 마치 뱉어진 침과 같은 것입니다. 침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침 안에 소화 효소액이 있어 소화를 돕고, 침이 있어 우리 입안이 건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땅에 뱉어진 침은 얼마나 더럽습니까? 똑같은 침이지만 입안에 있을 때와 땅에 뱉어졌을 때의 차이는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귀한 자녀입니다. 예수가 값 주고 산 하나님의 자녀인데 자리를 잘못 앉아 값어치 없이 더럽고 추하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리로 돌아오면 당신은 귀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가정에서의 아내의 자리, 남편의 자리, 자녀된 자리로 돌아오세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소리가 나지 않는 법입니다. 요사이 경찰이 자기 자리를 떠나 범죄의 자리에 앉더니 세상이 야단법석이지 않습니까?
제자리를 찾아 그 곳에 갑시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가 진정한 내 자리인지 돌아보고 잘못된 자리에 앉아 있거든 지금 당신의 자리로 돌아가세요.
교회 안에서도 받은 은사대로 자리에 앉읍시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다섯 달란트 받은 자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이익을 남길 수 없습니다. 전혀 성가대 자질이 없는데 남 보기 좋다고 앉아 있으면 얼마나 죽을 맛이겠습니까? 내게 주신 은사대로 자리에 앉읍시다.
모두 귀한 자리요, 모두 아름다운 자리입니다. 손이 발보다 나음이 없고, 귀가 입보다 천하지 않듯이 하나님의 일에 귀천과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를 통하여 날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합시다. 그 날 하나님은 우리에게 면류관을 씌우실 것이며 칭찬하실 것입니다.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내게 주어진 이 귀한 직분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당신을 참 하나님의 사람으로 기억하사 축복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인사(人事)는 곧 만사(萬事)다 사람 관리가 성공을 좌우한다
경영이란 관리며 점검이다 점검 불감증은 재앙의 원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