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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연약한 믿음을 억압하지 말라 (롬 14:1 ~10)

173호 · 2003-06-18

운전을 하다보면 차 뒤편에 ‘초보운전’이라고 쓴 차를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들로 운전이 서툴러 속도나 방향전환에 능숙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 뒤에서 계속 재촉하는 클랙슨을 눌러대거나 상향전조등을 켜서 위협을 한다면 그들은 당황하여 사고를 낼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초보운전 시절이 있습니다. 당신도 초보딱지를 붙이고 당황하던 때를 잊었을 뿐입니다. 지금 당황하며 가는 저 차의 주인공도 얼마 후면 당신과 같은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나오자마자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과정이란 것이 있습니다. 장성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전혀 몸을 뒤척이지도 못하던 때를 지나야 하며, 기어 다니는 기간도 지나며, 한 걸음씩 발을 떼는 시절도 지나야 잘 걷고 뛰어다니는 것입니다. 올챙이가 바로 개구리가 됩니까? 아닙니다. 성장해야 개구리 형체를 갖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에는 자원적 믿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자들이 소유한 믿음을 말합니다. 즉 버스를 믿고 타는 것, 음식점에서 먹는 음식에 독이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식사를 하는 것 따위의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구원적 믿음이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자로 초보적 신앙을 말합니다. 예수 이름을 부르고 그로 인하여 구원의 확신을 가진 정도의 믿음을 일컫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 믿음의 단계에 있습니다. 다음은 은사적 믿음입니다. 이는 믿는 자가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낫는다는 믿음, 저 산을 예수 이름으로 명하면 옮길 것이라는 큰 믿음을 말합니다. 이는 누구나 소유한 믿음이 아닙니다. 장성한 자의 것입니다.

믿음도 장성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누구나 성장의 단계를 밟게 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 젖부터 먹고 그 다음 이유식을 먹고 나중 딱딱한 식물을 취하는 것처럼, 믿음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는 어린 심령을 손가락질하며 영적 교만을 부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제 갓 예수를 영접한 성도들이 아파 병원에 갈라치면 ‘믿음도 없이 무슨 병원이냐?’고 마구 나무라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대학생이 초등학생을 보고 왜 미적분을 풀지 않고 더하기, 빼기하고 있냐고 나무라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분량대로 행하는 것이 이치입니다. 내 믿음으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입니다. 한 영혼을 실족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18:6)’.

요즈음 ‘성도의 소리샘’이란 전화를 개설한 후에 저는 직접 많은 성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 상담내용 중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아플 때 병원을 가야 하는지, 아니면 기도로 나아야 하는지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당신의 믿음대로 하세요. 병원에 가는 것은 절대 죄가 아닙니다.’ 라고 말해줍니다.

의사도 하나님께서 준비했습니다. 병원에 가는 것이 죄라고 성경은 이야기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병든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예수를 지칭하는 말씀이나 실지로 아픈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나음을 입을 만한 장성한 믿음의 소유자들이야 물론 예수 이름으로 치료됩니다.

그러나 이제 걸음마를 떼는 초보신앙의 소유자들은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합니다. 괜히 주위에서 ‘안수 받으면 나을 거야. 병원 가지마.’ 하며 부담을 주어 병을 키우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믿음이 우격다짐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강요에 의해 믿음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는 보호하고 보듬고 도닥거려야 합니다. 소화될 것만 골라 먹여야 체하지 않습니다. 이제 갓난아이에게 맛있다고 갈비 한 쪽 먹여보십시오. 급체하여 난리가 날 겁니다. 지금 당신이 초보신앙에 있는 자에게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마치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비가 얼마나 맛있는데 왜 매일 이유식이나 먹니?’ 이게 말이 된다고 보십니까?

수술해야 한다고 의사가 권하면 수술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2천년 전의 예수가 지금 역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전기가 일어나려면 (+)극과 (-)극이 만나야 하는 것처럼, 예수의 전류는 흐르나 한 쪽의 전류가 흐르지 못하면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도 동일한 예수의 능력이 행하여지나 마음이 이를 믿지 못함으로 역사가 불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죄는 아닙니다. 예수는 정죄하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 자유를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나 관리자는 우리 자신입니다. 차는 회사에서 만들어 출고하나 기름 치고 닦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몸도 우리가 점검하고 보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A/S는 해주십니다. 그러나 지정된 정비소에 가는 자가 있는 가하면 가까운 정비소를 찾는 자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법적 대응을 받습니까?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고장 나면 하나님이 예수 이름을 보내사 고치십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것을 할 만한 믿음이 없으면 가까운 정비소를 찾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병원 말입니다. 바로 옆의 정비소를 가려는데 지정된 정비소에 가지 않는다고 주위 사람들이 나무라고 손가락질하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결국 고장 난 차를 몰다 엔진이 터지거나 브레이크 파열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는 자기가 가장 잘 압니다. 믿음의 분량도 자신이 측정하는 것입니다. 장성한 믿음을 가진 자는 견인차가 되어 믿음을 끌어 주어야지 믿음을 강제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의 믿음으로 끌고 가다 넘어져 다치면 책임질 겁니까?

저의 첫 번째 소망이 있다면 우리 성도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입니다. 건강을 잃으면 전부 다 잃은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 건강이 제일입니다. 건강할 때 건강을 돌보십시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마십시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무슨 소용 있단 말입니까! 만물은 하나님이 필요하셔서 만드신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병원도, 약도 사용하세요. 그러나 믿음이 장성한 자는 예수 이름의 능력을 믿고 그를 의지하세요. 방법은 바로 당신이 정하는 겁니다. 어느 것을 택하든 건강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바람이며 또 저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키에 따라 보폭이 다르듯 믿음이 다 다릅니다. 보폭이 큰 자는 좀 일찍 목적지에 다다를 것이나 보폭이 작다고 목적지에 못 가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늦게 도착할 뿐입니다. 보폭을 늘리려고 다리를 찢지 마세요. 키가 자라면 자연히 보폭은 커집니다. 말씀으로 이웃을 억압하지 마세요. 또한 스스로 억눌리지도 마세요. 그래서 주 안에서 자유와 건강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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