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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호 목차 › 붕우칼럼

사 랑

173호 · 2003-06-18

사랑만큼 세상에 흔한 것도 없다. 그러나 정작 눈을 뜨고 찾아도 찾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이는 사랑의 이름은 있으나 진정한 사랑의 모형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 순수성을 상실했다. 사랑이 군더더기가 붙어 비대해졌기 때문이며, 기형화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조건! 이것은 언어도단이다. 사랑은 무조건(無條件)이어야 한다. 조건을 제시하는 ‘때문에’의 사랑이 아니라 조건을 받아들이는 ‘불구하고’의 사랑이어야 한다.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하고, 부유하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요즘 일부 세대의 사랑론에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아름다움이 상실되면 사랑도 상실될 것이고, 물질이 파기되면 사랑도 함께 파기될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소용돌이치는 세상을 자초하는 것이다. 이기적인 계산이 첨부된 것은 이미 사랑의 의미를 상실한 것으로 이는 협상이며 거래인 것이다.

스데반이 보인 사랑, 손양원 목사의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두 ‘불구하고’의 사랑이었다. 돌을 던지는 무리를 사랑할 수 있는 자, 자식을 죽인 원수를 품은 자, 대신 죽을 사랑을 가진 자, 모두 사랑의 대명사들이다. 사랑할 수 있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할 수 없는 자, 즉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이 사랑은 굴곡을 타지 않으며, 마르지 않으며, 퇴색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인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날 때 사랑은 자연스럽게 우러난다. 사랑 앞에 주판알을 던져버리고 사랑의 순수성을 회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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