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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부활이 없으면 망한 자다 (막 16:1~20)

165호 · 2003-04-25

기독교는 비극을 말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에서 막이 내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은 우리 신앙의 기점이 되며, 이는 부활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대작(大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계획하셨습니다. 그의 섭리와 경륜에 따라 역사의 수레바퀴는 움직이고 있습니다. 연출자이신 하나님의 시나리오에 따라 배우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셨고 죽으셨으며 또한 다시 살아나시어 드라마를 완성하셨기에 천국의 대스타가 되셨던 것입니다.

새벽 미명에 예수는 부활하셨습니다.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로마병정이 예수의 무덤을 지키고 있었으나 그것은 헛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부활하셔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고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을 차례로 만나셨습니다. 놀람과 기쁨이 교차한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는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둘째는 ‘성령을 받으라.’ 셋째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19, 22). 이 말씀들은 일련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이 없으면 평안합니다. 그러면 적이 누구입니까? 바로 악한 마귀입니다. 악한 마귀의 궤계가 없으면 진정한 평화와 평강이 우리에게 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죽으시고 부활하사 이 모든 것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적을 진멸하신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악한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었고, 마침내 승리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죄와 악으로부터의 평안, 가난과 고통으로부터의 평안, 그리고 영원한 안식까지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믿지 못하면 예수께서 주신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악한 마귀는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호시탐탐 모든 술수와 계략을 꾸밉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마귀를 대항할 능력이 없다면 예수가 주신 평안을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예수는 부활하시고 하늘 보좌에 앉으셨으나 그 예수의 이름을 가진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시어 늘 우리와 함께하시며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고로 성령에 충만함을 입고 사는 것은 예수와 동행하는 것이니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 겁날 것이 없습니다. 전쟁터에 나갈 때 무기가 좋으면 상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이번 미국과 이라크 전쟁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무기가 월등한 미국이 이라크를 단기간에 제압했습니다. 이라크의 무기는 노후했고 빈약하여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총칼보다 미사일이 낫고, 미사일보다 핵폭탄이 더 위력이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성령의 다양하고 강력한 은사를 소유하면 영적 싸움에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구이며 무기인 것입니다. 병사가 무기를 적에게 빼앗기면 적의 포로가 됩니다. 성령을 소멸하는 것은 무기를 잃는 것과 같아 악한 마귀의 밥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삶의 평안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자의 특성은 무엇인 줄 아십니까?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거기에 모인 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그들은 가장 먼저 무엇을 했습니까? 나가 전했습니다. 예수의 증인으로 나가 세상을 향해 예수의 부활과 다시 오심을 전했던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자는 뛰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까지 복음을 외친 것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기 때문이었고,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던 유약한 베드로를 사도로 만든 것도 성령의 힘이었습니다. 학문으로 단련된 사울을 철저하게 개조하여 사도 바울이 되게 한 것도 성령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세상은 부활을 모릅니다. 그들은 눈이 있으나 소경이요, 귀가 있으나 귀머거리인 것입니다. 굼벵이가 기한이 차면 매미가 되고, 유정란이 암탉의 품에 있다보면 병아리가 되는 것과 같이 우리도 때가 되면 썩어질 육을 벗어 버리고 썩지 않을 신령한 몸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죽으면 그만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어 영생과 영벌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이 있습니다.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요? 이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미국에는 미국이 정한 법이 있고, 대한민국에도 법이 있어 이를 지키지 않는 자에게 제재가 가해지고 이를 어기면 구속되는 것처럼, 천국(天國)은 하나님의 나라이므로 하나님의 법이 있는 것입니다. 그 법은 예수를 통하여 구원의 길이 열린다는 법입니다. 이 법을 전하지 않으면 세상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자동차가 후진하고 있는데 뒤에서 아이가 놀고 있는 것을 보고도 건져내지 않는 자는 악한 자입니다. 소경이 벼랑으로 떨어질 위경에 있는데 보고만 있다면 그 또한 천하에 악한 자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적 소경이며, 위험에 처한 자들이니 우리가 그들을 건져내야 합니다. 그들을 찾아 나서는 것이 성령을 받은 자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사명이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 않으면 화가 있는 것이 사명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뛰어다닌 것입니다. 제가 전국과 세계를 메주 밟듯 뛰는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진정 우리는 망한 자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조롱과 야유를 받고 핍박을 당하면서도 소망을 잃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 쟁취하여 넘겨주신 부활의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배우는 연출자의 지시에 따라 물불을 가리지 않는 혼신의 연기로 명작을 만들어내기만 하면 모든 영광과 부를 거머쥡니다. 우리는 연출자이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인생을 연기해내는 배우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여 천국의 대스타가 되려면 바로 연출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길 뿐입니다.

오늘 부활하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았으면 이제 나를 좀 증거해다오.’ 만물이 소생하는 봄, 이제 여러분의 영혼에도 성장과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의 조와 구역과 교회에도 성장과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부활의 소식을 들은 막달라 마리아, 예수의 제자들이 일생을 걸고 예수의 증인이 되어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명령을 사명으로 여기고 죽기까지 충성하는 하늘나라의 대스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무기를 빼앗기면 적의 포로가 되듯 성령을 소멸하면 마귀의 밥이 된다

적이 없으면 나라가 평안하듯 마귀를 진멸하면 평안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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