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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하나님은 너를 잊은 적이 없다 (사 49:14~26)

159호 · 2003-03-13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과 번개가 치면 아이들은 지레 겁을 먹고 이불 속으로 숨거나 엄마 품으로 파고듭니다. 아이들은 생태계의 섭리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으로 인하여 자연이 정화되고 에너지를 얻게 되는 이치를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하므로 단순히 공포의 대상으로만 여길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라 학교에서 지식을 쌓게 되면 이런 원리를 터득하게 됩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듯이, 제자가 스승의 뜻을 알 수 없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오묘막측한 사랑과 그 속에 감추어진 섭리와 뜻을 다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때론 불평하고, 때론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울부짖고, 때론 하나님께 잊혀진 존재라고 낙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를 버리신 적이 없고 잊으신 적도 없으며 그 사랑에 가감도 없으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외치시는 눈물어린 호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모 없는 고아처럼 사는 것은 우리가 부모를 의지하지 않음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간섭이라고 여기고 거기서 벗어났기 때문이며 부모의 채찍을 무정함이라 여겼기 때문에 부모와의 오해가 깊어진 것입니다. 부모와 대화하지 않기 때문에 오해가 깊어지고 결국 원수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당신의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놓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견고한 진을 치고 있어 하나님과의 담이 생기고 거리가 멀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으나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권력 있는 자나 재력 있는 자를 의지했지 하나님을 부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일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주의 종이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고 세상의 문화와 지식을 토론하고 있으니 능력을 손에 들려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외면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등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지식이 빛나고 진리가 녹슬고 있고, 거짓이 빛을 발하고 진실이 녹슨 세상을 우리가 만들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사랑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식으면 대화가 단절됩니다. 대화의 단절은 오해를 낳고 오해가 길어지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쁜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낮추심은 겸손을 배우게 하시려는 것이며, 우리에게 고난을 주심은 고난을 통하여 성장하라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낮추어 죽이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침륜에 빠지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하시려는 뜻이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세를 광야로 몰아세운 것은 그에게 자아를 버리게 하사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려는 깊은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을 사자 굴에 넣으심은 그로 인하여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임을 만인 앞에 나타내려 하심이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 분을 가히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를 믿고 신뢰하고 따라 가면 그는 우리를 좋은 길로 인도하시며 안전한 길과 평탄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전적으로 부모를 의지하는 것처럼, 그를 신뢰하고 의지하면 하나님의 크나큰 역사가 우리에게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하여 고난 중에 있을 때에도 그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찬송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그의 시인대로 그는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받았으며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믿음이란 힘들고 어려울 때 그 깊이가 측량됩니다. 신뢰 또한 고난 중에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삶 속에 어렵고 힘들 때 누구를 의지하느냐, 위급할 때 누구를 부르느냐가 그 사람의 신앙의 척도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권력 있는 자를 의지하지 말고 권력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지력 있는 자 앞에 무릎 꿇지 말고 지력의 원천되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조아립시다. 재력 있는 자에게 아부하지 말고 재력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간구합시다. 그는 전지전능하신 당신의 아버지입니다.

우리의 삶 전반에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며, 우리의 미련한 것으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실 것이며, 우리의 없음을 통하여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합시다. 기도와 간구로 그를 의지합시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 모두 우상이므로 하나님은 이를 다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자면 세상의 핍박도 있고 모함도 있고 멸시도 있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30)’고 말입니다.

세상은 지식이 난무하여 바벨탑을 쌓아 가고 있으며 하나님의 신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내리기 어려울 만큼 세상이 딱딱해져 가고 있습니다. 고로 21세기 목회는 다시 1세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도에 전무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느끼게 함으로써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케 해야 합니다. 이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능력을 입히시고 그를 통하여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우리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主)가 되셔야 합니다. 세상의 지식은 하나님을 전하는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며 세상 만물 역시 하나님의 영광의 재료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방패가 되시며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우리의 해법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돌아가면 그 분은 우리에게 금가락지를 끼워 주시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배설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있는 모든 소유를 우리에게 위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견고한 진, 즉 세상의 이론과 지식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그를 의지하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에게 영원토록 함께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삽시다. 하나님은 절대로 당신을 잊지 않으시고 늘 지켜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의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자가 참으로 복된 자요, 풍성한 복을 누릴 자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사랑 안에 거하는 지혜로운 아들, 딸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대화의 단절은 오해를 낳고 도해가 길어지면 원수가 된다

거짓이 빛을 발하면 진실이 녹슬고 세상 지식만 빛나면 신앙이 녹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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