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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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호 목차 › 옹달샘

망각이라는 것

158호 · 2003-03-07

시간이 많은 것을 잊게 한다. 아픔도 괴로움도 분노도 시간 앞에 누그러들고 사라지게 된다. KAL기가 격추되어 분통 터졌던 일도 까마득히 잊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리던 때도 벌써 기억 너머에 있다. 그 당시에는 정말 평생 못잊을 일 같았는데 세월이 그것의 흔적을 지워 버렸다.

망각. 이것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지난 것은 지난 세월에 묻으라는 하나님의 자상함이 거기에 있다. 평생 화를 끓여 될 일이 아니라면 잊는 게 좋다. 평생 눈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라면 잊혀지는 게 좋다. 사람이 가슴에 담는 용량은 한계가 있다. 또 세월은 과거를 퇴색시키기에 충분한 역량이 있다. 첫 아이를 분만한 여인이 그 아픔을 잊기 때문에 둘째 아이를 보는 것이란다. 첫 사랑을 잊을 수 있기에 또 다른 사랑을 맞을 수 있단다.

하나님도 망각을 지니고 계신다. 우리가 지은 죄를 회개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 잊어 주신다.

세월이 약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명언이다. 세월보다 아픔을 달래기에 좋은 위로제는 없다. 세월보다 고통을 치료하기 좋은 비방은 없다. 잊을 수 있는 것도 복이다. 기억이 옅어지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우리의 삶을 다 가슴에 담고 있다면 가슴이 터져 버릴 것이다. 우리의 머리는 아마 돌아 버릴 것이다. 아픔이 누적되고 고통이 겹겹이 되어 그것에 눌려 신음할 것이다. 우리 기억 속에 아프고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을 조금 접고 그 속에 아름다웠던 순간을 넣어 세월 속에 미소 짓게 하자. 잊혀진 것을 꺼내어 다시 아파할 필요가 없다. 잊혀진 것은 잃어버린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잃어버린 것은 어디에 그것을 두었는지 잘 모르는 것이나 잊은 것은 세월에 고이 둔 것이다. 세월에 잘 싸서 보관하는 것이니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대형 참사로 우리 모두 경악했다. 가족들에게 어떠한 위로가 가당하겠는가. 다만 세월이 그들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아픔이 세월로 인해 상쇄되어 가고 조금 옅어지고 그랬으면 좋겠다. 잠깐 동안 그들과 함께했다는 고마움으로 회상했으면 좋겠다. 흐르는 세월에 아픔을 떠나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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