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연합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시133:1~3)
제가 어릴 때는 먹을 것이 넉넉지 않을 때라 우리 어머니는 먹을 것이 있으면 항상 7남매를 순서대로 앉히시고, 어린 동생부터 먹을 것을 나눠주셨습니다. 그러다 보면 맏이인 제가 언제나 끝으로 받게 되는데, 그것을 먹으려고 하면 동생들은 벌써 자기 몫을 다 먹어치우고는 제 것을 빤히 쳐다보는 겁니다. 저도 어릴 때니 먹고 싶지요. 그런데 어린 동생들의 눈망울을 거부할 수 없어 “너네 먹어.” 하며 그냥 주고 밖으로 나올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부엌으로 저를 불러서, “우리 춘석이, 잘했어. 동생들을 그렇게 생각해주니 엄마가 고맙다. 내가 그럴 줄 알고 네 것을 따로 챙겨놨다.” 이러시는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별거 아닌데, 어머니는 형제와 나누는 것이 그렇게 고마웠나 봅니다. 그래서 더 좋은 것을 준비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한 번은 형제 중의 하나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자 어머니는 그 형제를 도와주길 바라셨습니다. 돕고 싶었고, 당연히 도우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성령이 ‘아직은 때가 아니다.’ 하셔서 미뤘더니, 어머니가 그렇게 섭섭해하셨습니다. 믿음이 약하셨던 어머니는 제가 왜 형제를 돕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하셔서 울기까지 하셨습니다.
부모가 되어보니 우리 어머니의 마음을 알겠습디다. 자식들이 서로 우애하고, 서로 돕고, 자주 교류하며 사는 것을 보면 그렇게 마음이 흡족합디다. 그러나 어쩌다 자식 간에 다툼이라도 나면 제가 좌불안석이 됩디다.
우리 하나님 마음이 딱 이러신 거 같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화목하고, 사랑하고, 이해하고, 협력하면 너무 흐뭇하셔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133:1)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가 가장 좋은 것을 저에게 주셨듯, 가장 큰 복으로 주십니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133:2~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믿음의 한 혈족입니다. 형제자매라는 겁니다. 그런데 형제간에 다투고, 당 짓고, 미워하고, 불협화음을 내면 아버지이신 하나님 마음이 여간 불편하시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는 한 목적을 가지고, 같은 푯대를 향하여 가는 신앙 공동체이니 당연히 협력해야 하는데, 파벌싸움이나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배가 산으로 가겠구나.’ 한탄하실 겁니다.
하나 되기가 어렵다고요? 하나가 되는 법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엡4:1~4).
사도 바울은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까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내가 낮아지고, 내가 온유하고, 내가 오래 참고, 내가 용납하라고 합니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한 성령을 모셨다는 공통분모가 있으니 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인데, 하나가 되는 것은 가만히 있어서 되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낮아지고, 온유하고, 오래 참아주길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낮아지고 온유하고 오래 참아주고 용납하라는 것입니다. “그래, 내가 참자.” 하면 싸움이 안 납니다. “내가 온유한 자가 되자.” 하면 상대도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집니다.
여러분, 혼자 자란 외동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게 뭔지 압니까? 형제 많은 집입니다. 어릴 때 형제 많은 집은 막내가 맞고 들어오면, 다 같이 우르르 나가 복수하곤 했습니다. 다시는 못 건드리게요. 그럼요, 자고로 외줄보다 삼겹줄이 강한 법입니다(전4:12).
‘연합(聯合)한다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두세 사람이 연합하여 함께 기도하면 응답이 빠르고요(마18:19), 일의 속도가 나고요, 일이 힘들지 않다는 겁니다(전4:9). 혼밥은 맛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연합하면 하나님 마음만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가 좋은 겁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라고 나옵니다. ‘우리’라고 말씀하심은 하나님도 혼자 일하신 것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가 되어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혼자 일하신 것이 아니라 12제자를 택하셔서 동행하며 일하셨습니다(막3:14).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 싸우게 되었을 때, 여호수아는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는 아론과 훌과 함께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모세가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기니, 모세의 지친 팔을 아론과 훌이 지탱해주어 전쟁에 승리했습니다(출17).
느헤미야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재건할 때 뜻을 같이하는 자와 연합했기에 52일 만에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가 혼자 풍전등화의 이스라엘 민족을 건져냈습니까? 아니요, 여기에도 연합작전이 있었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금식기도에 동참했습니다(에4:16). 저 혼자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했겠습니까? 모두가 연합하였기에 가능했습니다. 기도로, 물질로 헌신하는 자가 있고, 각자 맡은 일에 충성하였기에 가능했습니다.
가끔 교회 안에서 충돌이 이는 경우가 있는데, 대개 이런 경우입니다. 몸은 하나지만, 많은 지체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서 그럽니다. 귀가 있어야 듣고, 입이 있어야 말하고 먹지요. 코가 있어야 냄새를 맡고, 발이 있어야 걸어 다닙니다(고전12:12~21). 즉, 각자에게 주어진 직책이 있다는 겁니다. 어느 것이 더 귀하고, 덜 귀하고가 아니라 서로 협력해야 온전한 몸이 되고 지탱되듯, 교회의 일도 각자에게 주어진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안내위원이 높다, 성가대가 높다고 말할 게 아니라는 겁니다. 맡은 일이 다를 뿐입니다. 잘난체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연합하지 않으면 병든 몸이요, 비정상적인 몸이 될 뿐입니다. 교회에서 각자의 직분을 잘 감당하고, 각 부서가 연합하지 않으면 그 교회는 절대 성장할 수 없고, 큰일을 도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심 같이, 서로 연합하며 서로 협력하라고 하십니다
(고전12:25).
어느 사회나 단체나 ‘조직’이 있습니다. 조직을 처음 만든 사람은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였습니다. 모세가 백성 전체를 상대하여 재판하는 것을 보고 이드로가 안 되겠다 싶어 조직을 구성하여 일을 쉽고 능률적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출18).
세상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교회 안에서의 조직은 질서유지를 위한 것이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억압하고 행세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연합하고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합리적으로, 효율적으로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 안에서 형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화목함으로 연합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오죽하면 예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해하고 오라고 하셨을까요(마5:23~24).
우리, 성령으로 하나 되어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고, 부족한 것은 채워주며 한 목적을 위해 달려봅시다. 그러면 우리 어머니가 저를 위해 좋은 것을 준비했다가 주셨듯이,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넘쳐 내 땅을 기름지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1~5).
할렐루야!
다투면 공멸한다
서로 연합하여 공생하자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