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감사
아이를 키우며 깨닫게 된다. 한 아이가 스스로 걷고, 먹고, 화장실을 가고 어엿한 성인이 되기까지 그 뒤에는 수없이 많은 사랑과 돌봄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렇게 우리는 가족과 이웃,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도움 속에서 자라며 여러 은혜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 모든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다 보면 감사는 서서히 흐려지고 어느새 불평과 비교가 우리 삶을 채우기 시작한다.
나 또한 그런 순간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평범한 일들을 왜 나는 그렇게 간절히 구해야만 얻을 수 있을까?’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으로 투정을 부렸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과정들이 나로 하여금 더 귀하게 여기게 하고, 더 깊이 감사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아침을 건강하게 맞이할 수 있는 것, 편안하게 호흡할 수 있는 것, 눈 부신 햇살을 바라볼 수 있는 눈, 내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일상, 시원한 바람과 아름다운 계절의 변화, 우리 아파트 구석구석을 청소해주시는 분들, 아이들을 품고 가르쳐주시는 모든 선생님들…, 그 어느 것 하나도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이고, 기적이며 선물이다.
요즘 나는 식사 전 기도를 할 때마다 마음을 조금 더 다잡게 된다. 이 한 끼의 밥상 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땀과 수고가 있었는지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씨를 뿌리고 정성껏 기른 농부들, 깨끗이 손질하고 포장해 유통해준 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과정 위에 햇볕과 비와 바람을 적절하게 보내셔서 열매 맺게 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음을 떠올릴 때 감사는 더 이상 의무가 아닌 기쁨이 된다.
총회장 목사님께서도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방부제’라고 늘 말씀하신다.
감사는 병든 마음을 치유하고, 관계를 지키며, 무너져가는 삶의 균형을 일으키는 힘이 된다.
혹시 감사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한 걸음 멈춰 서서 우리 일상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 잊고 지냈던 감사의 마음을 회복하여 우리 삶에 기쁨과 평안을 되찾아보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
송지혜 집사
hello-english@naver.com
하나님의 지혜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다 보니, 학생들에게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어느 부분은 이해가 잘 안된다는 것이다. 모순과 같은 딜레마가 많다는 것이다. 뭐 성경을 배우는 단계이다 보니 그런 과정이 필요하겠다마는 성경을 배우는 자세부터 가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이해가 아닌,
‘믿음으로’ 신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미리 전제를 깔아놓고 시작한다.
총회장 목사님은 ‘이해하고 순종하려 말고, 순종하면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고 하신다. 맞다. 순종을 어느 위치에 놓느냐에 따라 신앙의 질이 확 달라진다. 영적 안목으로 믿고 순종하다 보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 은혜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은혜로부터 우러나온 순종이 아니라 내가 합당하다고 생각될 때 움직이려는 자세는 참 불손하다. 은혜에 감격하여 말없이 먼저 순종하는 것과 무수한 논쟁의 끝에 이해될 때 순종하는 행위는 마치 데칼코마니 그림과 같다. 양쪽 다 똑같은 행동이지만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해 불가하고 모순되어 보이는 ‘교리’라는 화두를 성경을 통해 투 트랙으로 던지신다. 똑같은 성경의 진리 앞에서 인간의 반응이 어떤지를 보시는 것! 이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하나님의 지혜다.
사실 성경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육의 눈으로만 보면, 모순덩어리로 보인다. 성경을 정말 인간이 썼다면 영업에 방해되는 항목들을 다 빼야 맞다. 삼위일체 교리, 예수의 신성 문제, 동정녀탄생, 십자가 대속교리, 구원교리, 창조교리, 선과 악의 부조화 문제… 등등, 너무 많은 난제들이 신앙의 확실성을 괴롭히는 듯하다. 그런데 불교나 천주교의 교리를 보면, 합리적으로 이해 가능한 교리로 사람을 끄덕이게 만든다. 끝까지 가다 보면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논리적인 구조, 이게 바로 철학의 방식이다(골2:8). 기독교의 교리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사고구조와 맞지 않는다. 이해, 납득, 공감이 잘 안된다(고전1:18). 인간이 제조하여 만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을 믿음으로 고백하도록 고백으로 남겨놓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필요하다고 고백해야 한다. 그럴 때, 목이 곧은 우리의 완악한 행동을 항복시키신다.
송직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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