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토에 농사가 잘 되고 열매가 실하다(시37:11)
인류 역사상 첫 번째 살인자는 가인입니다. 그가 왜 이런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가인은 농사를 지었고, 아벨은 양을 쳤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 가인은 일 년 동안 지은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안 받으셨다는 겁니다. 왜냐? 가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물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더니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이에 가인이 분이 가득했습니다. ‘왜 내 제사를 안 받으실까?’ 하고 자신을 돌아봤어야 옳건만, ‘왜 아벨 제사만 받으시는 거야?’ 하며 분을 냈고, 분을 못 이겨 아벨을 죽였습니다(창4:4~8). 그 결과 가인은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4:11~12)는 저주를 받습니다.
모세는 본시 혈기 왕성한 자였습니다. 혈기로 인해 살인을 하고 도망자가 되어 40년이나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천하에 온유한 자가 되었지만,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을 가던 중, 순간 욱하고 분이 솟구쳐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렸습니다. 민수기 20장에 보면 광야에서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므리바에 이르러 물이 없다고 불평하자 하나님이 모세에게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지팡이를 손에 쥔 모세는 늘 불평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가 치밀어 그만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치고 맙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토록 그리던 약속의 땅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들어가지 못했습니다(신34:1~5).
사울은 사람들이 골리앗을 죽인 다윗을 칭송하며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하자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그래서 이성을 잃고 다윗을 죽이려 혈안이 되어 허구한 날 다윗을 쫓습니다. 그 결과요? 사울은 자신과 자신의 아들이 함께 비명횡사하는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했습니다(삼상31:1~6).
당연합니다. 성경은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라”(욥34:15) 하셨고, 또한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터이므로 내 칼을 집에서 빼어 무릇 혈기 있는 자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집에서 빼어낸 줄을 알찌라 칼이 다시 꽂혀지지 아니하리라”(겔21:4~5)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잠27:4)라고 말씀하십니다. 작년에 슈퍼 태풍 ‘야기’가 동남아시아 일대를 강타했습니다. 언론에서는 60년 만에 최악의 홍수와 산사태가 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태풍으로 중국과 태국, 베트남 등지에서 수백 명의 인명 피해가 났고, 농경지가 다 유실되었으며, 수백 채의 집과 건물이 무너졌고,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수십억 달러가 되었습니다. 분노라는 것이 이 태풍과 같아 가족도, 친구도, 사업도 다 쓸어가 남는 게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성품이 태풍이 아닌 순풍이 되어야 합니다. 순풍에는 돛단배도 잘 가고, 순풍에는 곡식들도 잘 맺히고, 순풍에는 어른도, 아기들도 단잠을 자는 것입니다.
자고로 자갈밭은 잡초도 싫어합니다. 성질 팍팍 내는 사람, 버럭 하는 사람이 좋으면 손들어보세요.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절세미인이라고 해도, 능력이 대단한 자라고 해도, 그런 자는 다들 사절할 것입니다. 그러나 옥토는 모든 초목이 좋아하여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거기서 실한 열매를 맺습니다. 옥토와 같이 온유한 자는 누구나 좋아하고, 그 곁에 사람이 몰려듭니다. 온유한 자와 동업하고, 온유한 자와 결혼하고, 온유한 자와 목회하면 성경 말씀처럼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무병미락장수(無病美樂長壽)하고 싶습니까? 분을 내지 마십시오. 온유한 자가 되십시오. 가시가 많은 나무는 암에 잘 걸린다고 합디다. 그러니 사람인들 안 그러겠습니까? 또 성경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다”(마5:5),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37:11)라고 하시니 나를 다스려봄이 옳지 않겠습니까.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여러분, 분을 내면 마귀가 틈탑니다. 성경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27),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찌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딤후2:24~26)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틈타지 않게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시37:8)고 하신 겁니다.
그러면 욱하는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고 말씀하십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은 온유 그 자체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3절에 보면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라고 쓰여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 앞에서도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계셨고, 하나님의 아들인 자기를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자들 앞에서 분노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그 예수님께 배우는 것은 곧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그에 합당한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온유’요, ‘오래 참음’이기 때문입니다(갈5:22~23).
사도 바울은 예수를 뵙기 전에는 혈기가 왕성한 사람이었습니다(행9:1). 스데반을 죽이라고 난리를 친 사람이 바울된 사울 아니었습니까? 그런 그에게 성령이 임하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옛사람이 벗어지고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애매한 핍박과 환난과 모함에도 참고 이겨냈고, 더는 기뻐하였으며, 옥중에서도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항상 기뻐하라’고 편지했고, 고린도전서 13장에 아름다운 사랑 장
(章)을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도 한 성깔 하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대제사장의 군사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려 하자 베드로가 분노하여 칼로 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어버렸습니다(마26:53~54). 그런 그가 성령을 받은 후 변하여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벧전3:15~16)고 권면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도 혈기 왕성하여 사고를 쳐서 부모님께 걱정을 끼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니 혈기가 사라지고 온유한 자가 됩디다. 지난달 쌀띠요를 방문했을 때 엑토르 선교사가 몬떼레이 주지사와의 면담을 약속해놓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내년 몬떼레이 집회에 신축되는 축구경기장을 집회 장소로 사용할 수 있을지 타진하기 위해 주지사 공관에 갔는데, 비서라는 자가 아주 무례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절대 그대로 있을 제가 아니지만, 제가 성령을 받고 성화되었지 않습니까? 자존심을 버리고 분을 참았더니 월드컵 경기장 사용을 승인받았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는 말씀이 새삼 진리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옥토가 되어 우리 안에 열매가 많이 맺게 합시다. 온유한 자가 되어 온유한 자가 받는 복을 누립시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약1:20~21). 할렐루야!
옥토에 농사가 잘 되듯
온유한 자가 땅에서 잘 된다
온유한 자는 축복이 따르고
분노하는 자는 저주가 따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