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예수
부활의 예수님​
1982년 영국의 저널리스트 프랭크 모리슨은 책을 쓰기 위하여 취재를 시작하였다. 그가 보기에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아무런 과학적 근거 없이 맹목적으로 믿고 있으며, 그들이 전하는 증거도 논리적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복음서와 외경들을 통해 예수의 행적을 연구하며 부활의 사건이 허구임을 증거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정작 연구를 마친 그는 부활이 사실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출간한 책에서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예수님의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증명하며 신앙적 확신을 고백하게 되었다. 그 책이 바로 ‘누가 돌을 옮겼는가?’이다.
예수님은 만민의 죄를 대속하시느라 죄 없이 십자가를 지셨고, 3일 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온 인류에게 참 소망을 주시고자 약속대로 부활하셨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이며,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부활이다.
예수의 부활을 직접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던 도마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도마는 누구보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멀리 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에 이르게 된다.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간 이 땅에 계시다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것은 예수의 증인이 되어 달라는 것이었다(마28:18~20). 부활의 메시지는 확실하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증거하라는 것이다. 우리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예수를 증거하자!
김상욱 목사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용서!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3:13~14).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용서는 주님이 나를 용서하신 것같이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6:14~15) 하셨기 때문이다. 자신은 1만 달란트 탕감을 받았으면서 자신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행위다(마18장).
그런데 남을 용서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하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기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죄책감이란,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한 불신이다. 죄책감은 절대 회개가 아니다.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던 가룟 유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편 자기만 살겠다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는 회개하고 다시 주님께로 돌아왔다. 만일 베드로도 죄책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면 그도 주님으로부터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죄책감이 아니라 잘못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며, 자신은 하나님의 용서를 확신하고 죄책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용서는 사랑의 위대한 표현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경험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믿음의 산물이다. 그리고 진정한 용서는 지나간 잘못을 기억하지 않는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진정으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믿고 자기 죄책감을 떨치는 것이다. 용서는 삶을 아름답게 한다. 이 용서의 향기는 하나님께도 기쁨이 되며,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길이 된다. 우리 마음 깊이 남아 있는 미움이나 원망이 있다면 나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진정으로 용서하시라. 이 위대한 용서의 삶으로 진정한 자유와 기쁨의 삶을 누리시기를 축복한다.
임택함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