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상대를 어떻게 대접했나?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이 말씀은 곧, ‘비판을 받으려면 상대를 비판하고,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 정죄 받고 싶으면 상대를 정죄하고, 정죄 받고 싶지 않거든 정죄하지 말라. 용서받고 싶으면 상대를 용서하고, 용서받고 싶지 않거든 용서하지 말라. 대접받고 싶으면 상대를 먼저 대접하고, 푸대접받고 싶으면 먼저 푸대접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산에 올라 먼저 ‘야호’ 하고 소리를 지르면 ‘야호’ 하고 돌아오지만, ‘바보’라고 외치면 ‘바보’라고 돌아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야호’ 한 번 했다고
‘야호’ 하고 한 번 돌아옵디까? 아니요. 수 없는 ‘야호’가 돌아옵니다. 한 번 ‘바보’라고 하면 ‘바보, 바보…’로 돌아옵니다. 상대에게 대접하는 그대로 내가 받는데, 그것도 흔들어 눌러 넘치도록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이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하여 ‘황금률’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를 잘 정립하고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끔 말씀드리지요? 백 명의 동지보다 한 명의 적을 두지 말라고요. 그게 뭡니까? 내가 잘못 대접한 한 사람으로 인해 내 인생이 꼬이고 망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원수는 꼭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니까요. 그러니 상대를 지혜롭게 잘 대접해야 합니다. 자고로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얻는다고 하셨거든요(잠11:30).
그렇다면 어떻게 대접해야 할까요? 수직적인 관계, 곧 하나님을 어떻게 대접하고, 수평적인 관계, 곧 사람들을 어찌 대접해야 할까요? 성경에 뭔들 답이 없겠습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바로 이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잘 대접하는 방법 중 으뜸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드리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믿음을 보여드리는 것이 최고의 대접이라는 겁니다. 아이가 자기 친구들 앞에서 ‘우리 아빠는 못하는 것이 없어.’라고 했다면 아빠의 기분이 어떨까요? 반대로 ‘우리 아빠는 아마 이것도 못할 거야.’라고 했다면요?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임신한 마리아. 그녀는 사내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는 여호와의 사자에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1:34)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이라고 하셔도 이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가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눅1:36~37)고 말하고 떠납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보여줄 모델을 설정해준 것입니다. 이에 마리아가 직접 엘리사벳을 찾아가 그를 보고, 그에게 듣더니 믿음이 확고해져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눅1:47~48) 라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엘리사벳을 보고, 그에게서 듣고 믿음이 성장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사렛을 왜 떠나셨습니까? 고향에서 예수는 목수의 아들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목수 요셉의 아들이지 절대 선지자로 대접받을 수 없었기에 고향을 등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한 베드로를 복되다 하시고 그를 축복하사 교회의 반석이 되게 하시고 천국 열쇠를 쥐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히11:6).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고,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분이라고 인정해드리는 것이 최고의 대접이며, 하나님은 자기를 옳게 대접한 자를 위해 당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제대로 인정해드렸습니까? 일이 생기면 권력자를 찾고, 재력가를 찾아가지 않았습니까? ‘이건 하나님도 못하셔.’ 하면서 좌절하고 포기한 일은 없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이 대접한 대로 당신을 대접하십니다. 하나님도 감정이 있으시니까요.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로 가리까’ 하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실 것입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10:32~33)는 말씀처럼 하나님도 상대적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울러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한다면 하나님이 보낸 사자도 하나님처럼 대접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말입니다. 창세기 18장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자에게 자청하여 지극정성으로 대접한 일이 있습니다. 떡을 만들고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대접한 일입니다. 그 일로 인하여 아브라함은 그토록 바라던 자식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저 역시 외국에서 오신 목사님들을 최고로 대접합니다.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것이 나를 영접하는 것’(요13:20)이라는 말씀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자동차로, 최고의 호텔에서, 최고의 음식으로 모십니다. 갈 때도 빈손이 아니라 바리바리 선물을 안겨서 보냅니다. 그러면 예외 없습니다. 나중에 제가 그 나라에 갔을 때 그대로 대접받습니다.
하나님은 ‘소자에게 한 것도 내게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10:42). 어느 젊은이가 기도원 집회 기간 중 설레임이라는 아이스크림을 3,000개나 보내왔습니다. 저는 그에게 ‘너는 단번에 주님을 3,000번 대접한 셈이다.’라고 말해줬습니다.
둘째, 아내를, 남편을, 내 직장동료를, 부하직원을, 내 성도들, 내 백성을 내 몸처럼 대접하는 겁니다. 제가 결혼식 주례를 설 때면 “내가 짜장면 먹고 싶으면 내 아내도 짜장면 먹고 싶은 거다. 내가 놀러 가면 아내도 놀러가고 싶다.”라고 꼭 말합니다. 또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 한다며 아내를 폄하하는 놈들이 있는데, 자기 몸을 사흘에 한 번씩 패봐라. 병들고 만다.”라고도 말해줍니다. 추우면 두꺼운 옷으로 나를 보호하고, 아플세라 약도 챙기고, 맛있는 것을 찾아가 먹으며 자신을 챙기듯 상대도 그렇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집 들어서는 골목에 큰 개가 하도 짖길래 ‘이놈!’ 하고 눈을 부릅뜨고 야단을 치니까 더 짖어댑디다. 내 발소리만 들려도 동네가 떠나가라 짖어댑디다. 그래서 집에서 고깃덩어리를 가져다 몇 번 던져줬더니 나중에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지 뭡니까. 내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짖어대던 놈이 이제는 내 발소리에 벌써 마중을 나와 반깁디다. 개도 이럴진대 사람이야 일러 무엇하겠습니까?
인연은 하나님이 맺어주지만, 관계는 내 노력여하에 달린 겁니다. 자고로 음식도 맛이 있어야 하듯 사람은 맛, 인간미가 있어야 합니다. 따뜻한 정, 사랑, 용서가 있을 때 사람 맛이 나는 법이지요. 상대를 따뜻하게, 말 한마디라도 정겹게 나눠보세요. 아내를 종 부리듯 하지 말고 사랑으로, 남편을 돈 벌어오는 머슴 취급하지 말고 가장으로 대접해주세요. 기업에서도 경영진과 근로자가 서로 돕는 협력자로, 동역자로 대접하세요. 노사분규란 남의 집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이 권력을 마구 휘두르면 국민에게 심판을 받게 됩니다. 대통령이 배라면 국민은 물이니까요. 물이 한번 출렁하면 항공모함도 침몰하게 되는 법입니다.
그리고 나도 대접하세요. 운동으로 건강하게 하고, 영양식도 먹고…. 또한 독서로 혼을, 기도와 말씀으로 영을 건강하게 하세요. 그래야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한 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사 자업자득이라 합디다. 지금의 나를 보고 그동안 나는 하나님과 상대에게 어떻게 대했지 깊이 생각해봅시다. 할렐루야!
세상이 삭막한 것은
인간미가 없어서다
세상은 부메랑 원리다
뿌린 대로 거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