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1101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온전한 예배가 되려면

1101호 · 2021-06-13
신앙논객

온전한 예배가 되려면

대학부 토요예배를 마치고, 한 형제가 상담하고 싶다고 해서 전화통화를 했다. 그 형제의 말은 이러했다. “오늘 전도사님 설교를 통해 큰 은혜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찬양시간도 눈물을 펑펑 쏟을 정도로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원인모를 공허한 마음이 드는 겁니다. 왜 그런 걸까요?” 나는 그 형제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해요. 예배를 드릴 때 받는 은혜와 감동은 물론 귀한 것이지만, 예배가 끝나고 나의 삶이 당장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예배를 통해 받은 말씀과 현실의 삶 사이의 갭(Gap, 차이)이 느껴질 때 공허한 마음이 들 수 있어요.” .

청년들이 즐겨 부르는 찬양 중에 ‘마음의 예배(Heart of Worship)’라는 곡이 있다. 이 곡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찬양의 열기 모두 끝나면 주 앞에 나와 더욱 진실한 예배드리네/ 주님을 향한 노래 이상의 노래 내 마음 깊은 곳에 주께서 원하신 것/ 화려한 음악보다 뜻 없는 열정보다 중심을 원하시죠….” 우리가 교회에서 드린 예배가 헛된 것이 되지 않고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려면, 예배를 통해 받은 은혜와 감동이 성전 밖으로 흘러넘쳐야(Overflowing) 한다. 깨달은 말씀을 삶에 적용하고 행동으로 옮기려는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영적 싸움이 있어야 한다. 내 입술로 내뱉은 찬양 가사들이 공허한 울림이 되지 않도록 고백한 대로 살아내려 하는 부단한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신학교 때 설교학 시간에 교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 “목회자의 설교는 단 위에서 뱉은 말 50%와 단을 내려온 뒤의 삶 50%로 이루어진다.” 성도들은 목회자가 단에서 선포하는 말씀뿐만 아니라 그가 단을 내려와서 보이는 모습을 통해 배우고 그 가르침을 따라간다는 말이다. 우리 개개인의 예배에 있어서도 동일하지 않을까. 성전 안에서의 깨달음과 감동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전 문을 나서서 깨달은 대로 실천하고 감동을 따라 살아낼 때 우리의 예배는 비로소 온전해진다.

예배가 끝나고 난 뒤, 성전 문을 나서는 그 순간이 바로 삶의 예배의 시작이다. 나의 예배가 반쪽짜리 예배가 되지 않도록, 나의 몸(=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자(롬12:1).

신혁주 전도사

생명의 말씀

어른이 있는 행복한 가정

1970년대 한국을 방문했던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가 ‘한국의 가족제도가 그렇게 부럽더라.’고 말했다고 한다. 토인비가 부러워했던 것은 여러 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제도의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거기에 어른이 있고, 효도가 있고, 사랑이 있는 가정의 유대와 질서였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우리 가정과 사회에는 분명히 어른이 있었고, 그 어른이 가정의 중심을 잡고 있었다. 어른은 꼭 무엇을 많이 알거나 많은 것을 가졌거나 무슨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집안의 어른으로서 모든 가족이 권위를 인정해주었고, 분쟁이 있을 때는 어른의 최종판단결과에 모두가 따라주었다. 그래서 늙고 병든 노인일지라도 집안에는 어른이 있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떠한가? 전 세계가 부러워하던 우리의 가족제도와 집안 어른의 역할이 사라져가고 있다.

유럽의 경제적 어려움이 어디서 왔는가? 하나님을 몰아낸 계몽주의다. 계몽주의란 하나님 없이도 머리만 잘 쓰면 잘 살 수 있다는 사상이다. 이 어른이 없는 문화가 들어와 나라 곳곳에서 중병을 앓고 있다. 이 시대는 사사기 때와 같이 어른이 없는 시대로 보인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어른)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이는 각 개인의 주관적 판단과 자기 욕망으로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무질서한 사회였다는 것이다. 법이 무너지고 개인의 주관이 주장하는 사회가 되어 자기 멋대로 행동이 나타난 것이다. 법이 잘 지켜진다는 의미는, 보이지 않지만 어른(왕)이 계시다는 의미요, 법이 무너졌다는 것은 어른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가정(공동체)에는 어른이 있는가? 또 나에게는 어른이 있는가? 내가 그릇 행할 때 책망해주는 어른이 있는가 말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 옆에는 항상 어른이 있었다. 밧세바를 범한 후에 어른 나단의 책망에 눈물로 회개한다. 그러나 사울 옆에는 어른이 없었다. 하나님은 어른(사무엘)을 보내주셨건만 듣지 않아 그를 떠나버린다.

하나님과 부모님, 그리고 목사님이 우리의 어른이시다. 그 말씀에 순종하자! 그리하면 내 삶과 내 가정(공동체)이 천국이 될 것이다. 할렐루야!

임택함 목사

1101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성도들의 간증
옹달샘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객원컬럼
성경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