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표현
여보게!
내가 목회를 시작하고 어머니와 갈등이 심해서 집을 나왔지. 정확히 표현하면 집에서 쫓겨났다네. 우리 어머니 표현대로 예순가, 야수에게 미쳐 제사도 안 지내고, 재산을 무 자르듯 잘라 쓰는 아들을 더는 못 보신다고 해서 차 트렁크에 옷만 싣고 집을 나왔다네. 그렇게 생이별을 꽤 오래 했지. 그러다 어머니가 보고 싶고, 가족들도 보고 싶어서 집에 들르면 우리 어머니는 대성통곡을 하며 내 머리채를 잡고 흔들고, 내 옷을 갈기갈기 찢으셨지. 그때는 그런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네. ‘이제 그만하시지.’ 하는 생각에서 그랬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아졌네. 그것이 우리 어머니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우리 어머니는 당신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빠진 맏아들 때문에 가슴이 저리도록 아파 그 아픔과 사랑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게지. 그걸 깨닫고 나니 우리 어머니의 당시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네. 이제는 세상을 떠나신 우리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 때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하고 가슴이 미어진다네.
사람들은 내게 왜 단에서 그렇게 화를 내냐고, 왜 그렇게 소리를 벅벅 지르냐고 하지. 그러나 그건 오해네. 나는 화를 내는 것이 아니야. 그건 내 사랑의 표현이지. 우리 성도들이 내 말을 듣고 깨닫기를 원하는데 마냥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아, 듣기는 듣되 행함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고, 또 가난하고 병들고 걱정과 근심 속에 사는 것이 속상해서 그런 거야. 그런 마음이 있으니 소리가 절로 커지는 거지.
여보게!
사람들은 신명기 28장을 읽고는 왜 저주장이 축복장보다 기냐고 묻곤 하네. 하나님이 축복보다 저주를 주시려고 그러신 것이 아니냐고 오해를 하지. 그러나 그건 그분의 사랑 표현이라네. ‘내 뜻대로 살지 않으면 저주가 폭풍처럼 몰려오니 제발 내 말 좀 잘 들어라.’ 그런 거라네.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이 뭣 하러 우리에게 저주를 주시겠는가. 제발 이런 저주를 피하라는 그분의 표현 아니겠나.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사람의 깊은 속을 읽을 줄 아는 것 아니겠나. 같은 맥락으로 장성한 믿음을 소유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깊은 속을 깨닫는 것 아니겠나. 그것을 깨달을 때 효심이 깊어지고, 믿음이 깊어지는 것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