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쉬운 것이 가장 어렵다
2001 칠레 란까구아 집회
수요예배와 주일예배 연속으로 목사님은
‘대접(待接)’을 강조하셨다.
“하나님은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가지신 분입니다. 감정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자,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아오십니다. 이 시대, 이 역사, 이 시간에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 앞에 진실이 결핍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 딸들에게 준 것인데, 금세와 내세에 복을 받는 지혜의 말씀입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 대 인간의 처세술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성경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을 진정과 신령으로, 억지로나 인색함으로가 아니라 정말 기쁨으로 감동돼서 영접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학력이나 재력이나 문벌이나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데, 그 중심에 진실로, 진실로 하나님을 영접하고 대접하는 자를 소돔과 고모라에서, 애굽에서, 저주와 가난과 죽을병에서 건져내십니다. 망한 자가 흥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거울처럼 보여주는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어떻게 영접했는지, 롯이 하나님을 어떻게 영접했는지, 루디아가 어떻게 바울을 영접했고, 고넬료가 베드로를 어떻게 영접했고, 여러분들이 나 이초석 목사를 어떻게 영접했는지 생각해보세요. 진실로 주의 종을 하나님처럼 영접한 사람의 가정에 하나님은 창대한 복을 내리십니다. 병과 저주와 가난과 고통,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십니다. 왜냐?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천사를 진실로 대접하여 아들 이삭의 축복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숨기지 않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구원받은 롯 역시 천사를 하나님처럼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위들은 장인의 말,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다 유황불 속에 멸망했고, 아내는 사위들 생각에 뒤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예수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집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영접하고 대접해야 합니다. 대접의 한자를 보세요. 기다릴, 접대할 대(待)입니다. 접할, 사귈 접(接)입니다. 내가 그분을 알아야겠다, 사귀어야겠다, 모든 것을 다 준비하고 신랑 맞을 준비를 한다, 신부단장하고 있다, 대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겁니다. 그 사람이 성령충만한 자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영접은 어떻습니까? 환영할 영(迎)입니다. 환영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환영한다, 성령을 환영한다, 내가 성령을 모셔 들인다, 그분을 접하며 그분과 사귀길 원하고 그분과 친구 되길 원하며 내가 최선을 다해 그분을 영접할 때, 하나님이 그 마음에, 그 가정에 오십니다. 그 사업에 임하십니다. 그 교회와 나라에 임하십니다. 주의 종을 대접할 때, 영접할 때, 천사를 대접할 때, 영접할 때, 하나님의 성령을 대접하고 영접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접하고 영접했습니까?
우리가 칠레에 갔을 때, 수닐다 여사는 우리 일행을 왕처럼 대접했습니다. 그 가정이 대대로 주의 종들을 최고로 대접했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슬라바 목사의 동생 니콜라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를 다니며 우리 일행을 최고로 대접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간증은 동일하게 주의 종을 하나님처럼 영접하고 대접하여 하나님의 창대한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대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처럼 대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접할 때는, 대접할 때는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신, 만물을 창조하시고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을 최고로 대접해야만 최고, 최대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가장 쉬운 게 가장 어렵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받는 여러분도 깨닫고 순종하여 아브라함처럼 창대한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