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와 변호사
“나에게는 검사가 되고, 타인에게는 변호사가 돼라.”
무슨 말인가 하면, 나에게는 검사처럼 잘못한 일이 있으면 냉정하게 추궁하고 죄를 물어 대가를 치르게 하나, 타인에게는 너그럽고 관대하며 잘못을 감싸주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에게 관대하다. 잘못을 해도 쉽게 용서하고, 합당한 이유로 용납한다. 오죽하면 ‘내로남불’이란 말이 생겨났을까.
그러나 나는 다르다. 나에게 나는 깐깐한 검사처럼 대한다. 저녁이 되면 일기에 내 잘못을 쓰고 반성하는가 하면, 거울을 보고 “이초석아, 너 왜 그랬어?” 하며 질책할 뿐 아니라 내 뺨을 때리며 호되게 나무라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는 똑같은 우(愚)를 범치 않도록 한다.
나에게는 엄격해야 한다. 나에게 너그러워지면 내 안에 슬슬 균이 생기게 된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이러면 게으름이란 균이 생겨나고, ‘아무도 안 봤으니까 괜찮아.’ 하면 거짓이란 균이 생겨나고, ‘뭐 이 정도면 됐지. 괜찮아.’ 하면 대충이란 균이 생겨난다. 그것을 방치하면 그 균이 결국 내 인생을 갉아먹어 실패자, 낙오자로 만든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모진 검사가 돼라. 그것이 너를 성공의 길로, 바른길로 인도할 것이다.
대신 남에게는 너그럽고, 관용을 베푸는 자가 돼라.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고, 오 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라도 가주고, ‘다 까닭이 있겠지, 그럴 상황이 있었겠지.’, ‘누구든 온전할 수 없지.’라고 생각하면 다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신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눅6:41~42).
나에게 나는 깐깐한 검사인가, 너그러운 변호사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