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게 없으면 몸 고생만?
정초(庭招)에 있었던 일이다. 새해 인사를 드리러 처가에 들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 집을 나서려는데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에 ‘떡’ 하니 노란색 주차금지 경고장이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스티커를 제거할 요량으로 다시 집에 올라와 칼과 물통, 그리고 화장지를 챙겨 내려갔다.
영하 15도라 날은 춥지요, 거기에 겨울바람은 쌩쌩 불지요. 스티커는 아주 빈틈 하나 없이 ‘촥촥’ 붙여놨지요. 게다가 뭐를 사용했는지 긁어도 긁어도 떨어지질 않지요…. 오만상을 쓰며 스티커를 긁었는데도, 이게 점점 얼룩만 번질 뿐 도통 진척이 없는 것이었다. 커지는 얼룩과 함께 감정 또한 롤러코스터를 탄 듯 요동을 쳐댔다.
‘아니, 붙여도 요렇게 딱 한가운데 붙여 놓나. 떼기 쉽게 붙여 놓으면 좀 좋아?’ 했다가도. ‘아냐, 내 마음에 붙어 있는 더러운 죄악들이 이와 같을 거야, 내가 깨달을 거라도 있나?’ 하다가도. ‘거 참, 명절인데 좀 봐주시지, 해도 해도 너무들 하시네. 진짜!’ 애꿎은 경비아저씨들 탓을 해가며 투덜투덜….
결국 30분이나 벅벅 긁어대도 얼룩이 지워지질 않자, 하는 수 없이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인터넷을 검색했다. ‘주차 경고 스티커 제거 방법’
아뿔싸, 그런데 이게 뭐람? 칼이나 가위로 긁으면 안 된단다. 유리창에 스크래치가 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냥 스티커에 물 들어부어 봤댔자 아무 소용없고 수건을 스티커에 댄 후,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붓고 5분쯤 기다렸다가 떼던가, 아니면 에프킬라를 뿌려놓고 기다렸다 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머리가 뭐 하면 손발이 뭐 하다고…. 이이고 두야!
인터넷에 사시는 지식인이 알려준 방법대로 에프킬라를 듬뿍 뿌려놓고 얼마간 기다린 후에 쓱 문지르는데, 이게 웬걸? 너무나 쉽게 닦이는 것이 아닌가! ‘아, 나는 지금까지 영하 15도 칼바람 맞으며 뭔 짓을 한 걸까?’ 그러게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는 법이다, 지식이! 모르면 물어보는 것이 지혜요, 아는 것도 다시 확인해보는 것이 현명한 처사인 것이다. 아차! 그러고 보니 내 이름이 현명인데 이름 값도 못했네, 그려?
‘주여, 부족한 종 때문에 그간 속 끓이시느라 얼마나 고생이십니까요!’
아는 게 없으면 몸이 고생한다. 그런데 단지 몸만 고생일까? 그 인생도 고달프고, 그와 함께 한 사람까지 고달파진다. 그 영혼의 끝은 또 어떠할까!
베드로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벧후1:2)라고 했다. 이처럼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법이다. 그래서 알아야 자유롭다. 알아야 누리는 법이다. 모르니까 속고, 모르니까 억압받고 끌려다니는 것이다.
지금은 안일함에 빠져들 때가 아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