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Reset)
우리는 모두 ‘코로나 사태’를 힘겹게 견뎌내고 있다. 걷잡을 수 없이 포악하게 퍼져나가는 바이러스 앞에서 불가능은 없다는 듯 승승장구하던 인간들의 능력은 초라해지고, 불안과 두려움이 우리를 억눌렀다. 선택의 여지도 없이 모든 일상을 접고 기약 없는 격리상태에 들어갔다.
사도 바울이 죄수의 신분이 되어 로마로 향하는 선박을 탔을 때 큰 풍랑을 만난 일이 있다. 선원들은 배의 짐과 장비들을 다 바다에 던져버렸고, 소망을 잃은 채 두려움에 떨었다. 구원의 희망이 보이지 않던 그때 바울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그들에게 삶의 확신을 주었다. 하나님이 그를 로마에 보내실 계획을 반드시 이루실 것임을 믿었기 때문이다(행27:25). 바울의 일대기 속의 짧은 에피소드이지만, 거친 풍랑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 우리를 닮아있다. 배가 가라앉을지 모르는 비상상황이 닥쳤을 때 선박을 가볍게 하기 위해 짐이나 장비 등을 바다에 버리는 것을 ‘투하(Jettison)’라고 한다. 우리도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풍랑 앞에서 삶 속의 많은 것들을 투하했다. 두렵기도 했고, 실제로 감수해야만 하는 손실도 많았지만 많은 것을 내려놓고 몸을 숙여 견디고 있다.
풍랑은 점차 잦아들고 있다. 이제 다시 배를 띄워 세상으로 나아갈 때 당신의 배에는 무엇부터 실을 것인가. 그 중심에 흔들림 없는 믿음을 굳게 세우고, 하나하나 신중하게 점검해가며 채워 넣자. 삶의 목표, 삶의 방식, 삶의 우선순위가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도록 리셋(Reset)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늘 말씀을 가까이하고, 기도의 생활을 게을리하지 말 것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에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 위기가 닥쳐도 그것만은 흔들림 없이 유지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인생의 비상상황은 언제 또 발생할지 모른다. 언제든 덜 중요할 것은 내던질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크리스천이 중심에 붙잡을 것은 오직 부활과 영원한 삶의 약속이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풍랑 속에서도 생동하여 움직인다는 것을 잊지 말자. 분명한 목적을 가진 배는 거친 흔들림도 견디어낼 것이다.
이호은 사모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에서 무신론자들이 모여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것을 증명하는 회의가 열렸습니다. 유명한 천문학자와 의사가 나와서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등단한 천문학자가 자신이 개발한 고성능 천체망원경을 자랑했습니다. “이 망원경으로는 우리가 발견한 가장 멀리 있는 별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 동안 아무리 살펴보아도 하나님의 옷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청중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습니다.
다음으로 연단에 오른 의사는 “기독교인들은 사람의 영혼이 있다고 하는데 평생 의학을 연구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인체를 해부하고 수술을 했지만 그 영혼은 살 속에도, 뼛속에도, 핏속에도 없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청중을 향해 질문을 하라고 하자 할머니 한 분이 일어나 연단 앞으로 나갔습니다. 먼저 천문학자에게 “박사님, 망원경으로는 바람도 볼 수가 있나요?” 당황한 박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의사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아내와 자녀들을 사랑합니까?”, “물론이죠,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이 어디에 들어있습니까?”, “…….” 할머니의 질문으로 인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회의가 되고 말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없다고 하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자는 없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만드신 분입니다. 만드신 분의 말씀을 들으면 우리 인생이 고민하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상화평 목사
환난 날에 대처하는 신앙인의 자세
요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극심합니다. 이 전염병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우리 교회도 두 달 가까이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고, 지금도 적극적으로 국가 시책에 최대한 협조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가 교회에 다 같이 모여 예배드리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환난 날이면 저는 군대에 있을 때가 생각납니다. 당시는 이라크 파병 모집 지원을 할 때였습니다. 저는 목사님께서 단 위에서 하시는 말씀처럼 지도자가 되리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이라크 파병을 지원하고자 했습니다. 언젠가 지도자가 된 제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고 이라크 파병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멋있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갔던 영국의 해리왕자가 사회 지도층으로서의 의무를 다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저의 이러한 결심을 어머니께서는 극구 반대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아들의 안위가 걱정되셨기 때문입니다. 파병에는 부모님의 동의가 필수조건이었고, 저 스스로는 장차 사회 지도자가 되기 위한 이야깃거리라는 점에서 논리가 완벽했기 때문에 저는 어머니를 계속 설득했습니다. 절대 반대하시던 어머니는 목사님께 상담해보자고 하셨고, 목사님은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꽤 당황스러웠습니다. 월남전에도 가셨고 애국자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목사님께서 반대하시는 것이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께서는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잠27:12)며 환난을 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차출되어 간다면 하나님의 뜻이겠지만 환난을 자처하여 가는 건 부모님의 걱정과 눈물이 되기 때문에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고, ‘나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다를 수 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온라인 예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소낙비는 잠시 처마 밑에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굳이 비 오는데 나갈 필요 없습니다. ‘비옷을 입으면 될 것 아니냐?’ 하는 사람도 있는데, 비옷을 입어도 젖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이런 환난의 때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덕이 되기 위해서 지혜롭게 국가의 방침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때가 되매 다시 성전 문이 열렸고, 다시 모여서 예배를 드리게 되지 않았습니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 이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될 날도 올 것입니다.
김대화
realdialog@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