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속에서 찾은 희망!
18세에 독일군에 징집되어 갔던 ‘아디(Adolf)’가 전쟁에서 돌아온 1919년, 아버지의 신발공장은 어렵고, 어머니의 세탁소는 경제 불황으로 문을 닫게 된다. 아디는 오래토록 품었던 꿈인 ‘혁신적인 운동화를 만들자’라는 희망을 가지고, 문 닫은 세탁소를 작업장으로 사용하며 동네 사람들의 신발을 수리하면서 전쟁 폐기물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육군 헬멧과 파우치에서 가죽을, 낙하산에서 실크를, 군복, 포대 자루, 자동차 타이어 등에서 신발을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재료를 모은다. 그리하여 아디가 만든 신발은 지역 스포츠클럽에 좋은 평가를 받아 많은 주문을 받게 된다. 이에 아디는 다른 종류의 스포츠화를 만들려는 계획을 세우고는 소가죽으로 운동화를 만들고 신발 밑창에 못을 박아 운동장 트랙에서 이용하기 쉬운 최초의 런닝화를 만들게 된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웃기게 생겼다’,
‘효과가 없을 것 같다’며 비판했는데, 아디는 이에 신경 쓰지 않고 1925년 스파이크를 박은 런닝화 특허를 내고, 1928년 암스테르담 하계올림픽에서 독일 육상선수인 리나 라드케에게 신겨 세계신기록까지 세우게 된다. 또,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미국 육상선수 제시 오웬스가 아디의 신발을 신고 금메달을 4개나 따면서 전 세계에 아디의 운동화를 알리게 된다. 아디는 1949년 ‘아디(애칭)+다스(성: Dassler)’를 설립하고, ‘농구화’, ‘축구화’, ‘축구공’까지 만들면서 1970년 FIFA 공인구로 채택되어 ‘아디다스’는 나이키와 쌍벽을 이루는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가 되었다.
아디는 전쟁이라는 어려움,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 가운데서도 ‘혁신적인 운동화’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아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를 만들어내었다. IMF 때보다 더 큰 위기라는 지금, 아디처럼 전쟁 속에서도 희망을 찾은 이들을 본받아 위기를 점프하여 더 큰 기적을 만드는 자들이 되자.
송현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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