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팔지 말라
여보게!
가룟 유다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스승이었던 예수를 은 삼십 냥에 팔아먹은 자 말이야. 정확히는 은 삼십 세겔에 판 거지. 그게 어느 정도냐면 한 세겔의 가치가 노동자 4일의 품삯 정도였다고 하니 삼십 세겔은 30×4=120일, 대략 노동자 넉 달 치 월급 정도인 셈이네.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다녔고, 그분의 능력을 봤고, 그분의 권세가 어떠한지 알았고, 그분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는데도 그리한 거라네. 그래서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예수님 말씀대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인물이 된 거라네.
그렇다면 가룟 유다만 예수님을 팔았을까? 우리는 예수님을 판 적이 없을까? 그것도 아주 값싸게 말이야. 상사 눈치 보느라 상량식에 가서 돼지 대가리에 돈을 꽂고 절할 때 예수를 판 거고, 골프 약속 지키느라 주일 성수를 안 할 때 예수를 싸게 판 거고, 사람들과 식사하면서 기도하지 못할 때, 시댁 어른들이 무서워 제사 지낼 때도 예수를 판 거라네.
여보게!
스가랴서 11장 13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라는 말씀이 나오네. 은 삼십 냥이 “나를 헤아린바 그 삯”, 즉 하나님을 헤아리는 값이라는 것이야. 하나님의 값이 은 삼십 냥 밖에 안 될까? 감히 하나님을 어찌 값으로 측량하겠는가?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너무 귀히 여기지 않는다는 거야. 하나님은 거래의 대상도 아니고, 타협의 대상도 아닌데 말이야. 믿음의 선친들은 하나님을 두고 거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갖은 고초를 당하고 죽음에까지 이른 것이 아닌가.
자네는 제2의 가룟 유다가 되지 말게. 행여 비싼 값에라도 팔지 말게.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송 있지 않은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하나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우리 삶의 전부라네. 그러니 그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의 이름이 빛나도록 처신하게. 내가 비록 죽어도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이름임을 알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