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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한계는 스스로 긋는 것이다 (롬4:17~25)

995호 · 2019-03-24

믿음이 뭡니까? 히브리서에는 믿음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즉 믿음은 바라는 것, 즉 마음속에 그린 것이 실상으로 이루어져 나타나는 것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이 증거로 눈에 보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롬4:18)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바랄 수 없는 것을 이루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고,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눅18:27).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열국의 아비가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일이 쉽게 이뤄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나이 100세가 다 되도록 자식이 없었습니다. 현실을 보자니 하나님의 말씀이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안 그러겠습니까? 아내 사라도 90세가 되었으니 사실 죽을 준비할 나이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때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하늘의 뭇별을 보게 하십니다. 별 하나 달랑 떠 있는 하늘이 아니라 총총히 박혀 셀 수 없는 별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생각을 바꾸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것을 믿었습니다. 로마서 4장에는 그의 믿음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롬4:18~22). 그래서 결국 100세에 이삭을 얻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졌습니다. 왜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을 바치라고 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순종했는지 압니까? ‘경수가 끝난 아내에게서 아이를 낳게 하신 하나님이 죽은 아들인들 못 살리시겠느냐’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는 증표입니다. 만약 일찍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셨더라면 어쩌면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드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지 못했으니까요.

여러분도 ‘뭇별을 바라보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매일 땅만 내려다보지 말고, 내 형편과 사정만 보지 말고 아브라함처럼 뭇별을 바라보고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곧 우리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역사하셨듯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롬4:23~24). 아브라함에게만 역사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그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먼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입니다. 즉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등록금은 부모가 대줘도 공부는 내가 해야 하는 것이듯 말입니다.

가나안을 정탐하러 간 12명, 똑같은 시간대에 똑같은 상황을 보고 돌아왔는데 전혀 다른 보고를 합니다. 10명은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다. 그래서 절대 그들을 이길 수 없다.’고 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었을까요? 시각의 문제요, 생각의 문제입니다. 10명은 자신을 바라보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미래는 없습니다. ‘안 된다’는 생각은 안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어찌 가시나무를 심고 무화과를 얻을 수 있습니까? ‘된다’는 생각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랄 수 없는 바라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지만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홍해를 모세가 갈랐습니까? 갈라질 것이라 믿고 지팡이를 내미니 하나님이 가르시지 않았습니까? 여리고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너뜨렸습니까? 일곱 바퀴 돌면 무너진다는 바랄 수 없는 믿음을 가지고 돌았더니 하나님이 무너뜨렸습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랐으니 네가 해봐.’ 이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데 왜 못합니까? 생각만 바꾸라는데 그것도 못합니까? 시편 81편 10절에 “나는 너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왜 ‘나는 너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고 전제하셨느냐면, 하나님께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도 못 믿으니까, 하도 입을 작게 벌리니까 ‘나는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하나님이니 나를 믿고 네 입을 벌릴 수 있는 만큼, 입이 찢어지도록 벌려봐라. 내가 채워줄게.’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열왕기하 4장에 한 과부가 엘리사에게 살 방도를 청했을 때 엘리사는 빈 그릇을 조금 빌리지 말고 많이 빌려오라 한 후, 문을 닫고 들어가 기름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그릇에 기름이 다 찼을 때 기름이 떨어졌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왕 빌리는 거 그 마을에 있는 빈 그릇을 다 빌렸으면 하나님이 다 채우시지 않았겠습니까? 여러분도 이왕 생각하는 거, 세금 내는 것도 아니고 학력이나 미모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마음껏 생각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친들은 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룬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특별한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마음껏 생각을 크게, 넓게 한 사람들이었기에 이적과 기사를 체험한 것입니다. 도망자 야곱이 반드시 금의환향하리란 생각을 가지자 하나님이 야곱으로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다 하십니다. 그러니 생각을 바꾸세요.

우리 입장에서 보니까 ‘못한다’ 하는 겁니다. 사람 생각을 가지니까 불가능이란 말이 나오는 겁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며, 처음이요 마지막이 되시는 분입니다. 그분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산을 들어서 바다에 던질 수 있고(마17:20),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막10:25). 왜냐하면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막10:27). 그런데 왜 여러분이 하려고 합니까? 왜 사람의 생각으로 삽니까? 왜 스스로 한계를 긋고 있습니까?

이제 메뚜기 사상을 버리고 하늘의 뭇별을 바라다봅시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는 말씀을 명령으로 받아 생각을 바꿉시다. 여러분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는 말씀은 먼저 땅에서 풀면 풀리고, 먼저 땅에서 매면 매인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 생각이 ‘할 수 있다’ 할 때 하늘에서 천군과 천사와 만인을 들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못한다’ 하고 스스로 한계를 그으면 하나님은 절대 그 한계를 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 그것이 천국 열쇠입니다.

믿음은 이미 결정된 하나님의 계획도 바꿉니다. 태의 문을 닫은 한나가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죽을 테니 유언하라던 히스기야가 해를 거꾸로 돌리는 기적 속에 생명을 연장받았습니다. 다 쓸어버린다는 이스라엘 민족을 모세가 살렸습니다. 긍정적인 생각, 할 수 있다는 생각,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당신의 미래를 바꿉니다. 할렐루야!

생각의 속도를 내라

생각의 그릇을 키워라

심은대로 거둔다

어떤 생각을 심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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