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람 요셉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41;15~16).
애굽의 총리가 되기 전까지 요셉의 삶을 보면 정말 기가 막힌다. 부자 아버지 야곱의 총애를 받으며 채색옷을 입고 세상 물정 모른 채 마냥 꿈에 부풀어있던 어린 소년이 항상 믿고 따랐던 형들의 시기, 질투에 희생되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구덩이에 던져진 후 살려고 몸부림치던 시간, 미디안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려 애굽으로 끌려가 낯선 이국땅에서 보디발의 시종으로 일을 시작하기까지 요셉이 당한 공포와 절망감은 얼마나 극심했을까? 성경에는 자세히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아마 요셉은 마음을 다잡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를 견고히 하기까지 수많은 시간을 숨죽여 눈물로 기도했을 것이고, 분명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주신 꿈을 환기시키시며 소망과 위로를 주셨으리라.
그렇게 맘 잡고 열심히 살다보니 주인에게 인정도 받고 이젠 좀 살만해졌다 했는데, 이번엔 성폭행, 강간, 그야말로 가장 파렴치한 죄목으로 옥에 갇힌다.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다. 정말 미치고 환장하고 팔딱 뛸 일 아닌가. ‘하나님 앞에 어찌 득죄할 수 있나’ 하는 멋진 믿음을 보였는데도 말이다. 이 정도면 솔직히 여느 사람 같으면 자살하기 딱 좋은 조건 아닌가?
그런데 요셉이 놀라운 점은 그 어떤 환경도 그를 넘어뜨리지 못했고, 심지어 어떤 환경에서도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노예에다 나중엔 강간범까지, 사실 그 정도 인간이면 개무시당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그 누구도 요셉을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술관장, 떡관장 같은 고위공직자, 비록 지금은 옥에 갇혔지만 출소하면 고위직으로 복직하게 될 인물들이 그들의 고민을 요셉에게 토로하고 자문을 구한다. 나아가 애굽 최고의 통치자 바로조차 강간범 요셉을 불러 꿈의 해석을 부탁하지 않던가? “하이고, 내 처지가 지금 이 마당이니 내 억울한 사정이나 들어주소!”하며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울고불고할 처지인 요셉이, 오히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조언까지 해주는 장면을 보며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찌해야 하는지 깊이 깨닫는다.
“내 형편이 이 모양인데 무슨 전도가 되겠어? 나는 하나님 영광이나 가리고 있는 놈이야.” 하며 비관하고 있다면 요셉을 보고 생각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비관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최선을 다하는 삶,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 취해야할 삶의 자세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