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황충만 장로, 권영화 전도사 부부
우리 교단의 초기 부흥기 시절, 성령의 폭포수 같은 은혜 속에 물불 안 가리고 기도와 전도에 열정을 쏟았던 이들이 있다. 지금은 60대를 넘어 70대에 이르는 1기, 2기 여전도사님들이다. 30, 40대에 목사님을 만나 온갖 핍박을 함께 견디며 그 혹독한 시절을 오직 예수에 미쳐 살아온 분들이다. 우리 교단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이분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그 불같은 열정이 있었다. 태국(Thailand) 치앙라이(Chiang Rai)에서 만난 권영화 전도사를 통해 우리는 그 시절을 환기할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당시에도 우리 교회에 와서 처음 부닥치는 사안은 제사 문제, 그리고 성령을 받아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니 예수에 미쳤다며 믿지 않는 남편에게 받는 엄청난 핍박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오히려 더 하나님 일에 앞장서는 황종만 장로이지만 당시에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 지옥행이라고 느낄 만큼 하루하루 남편에게서 오는 시련은 눈물의 기도가 아니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조장을 맡아 심방이다 전도다 하며 다니다보면 하루해가 어찌 그리 짧은지, 그러나 그 시간만큼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집에 가면 어느 날은 욕이 사발로 쏟아지고, 또 어느 날은 바깥으로 나다니지 못하게 하려는 심사로 옷이란 옷을 죄다 가위질해서 버려놓기도 했단다. 한번은 목사님 사진을 갖고 싶었는데, 부목사님이 갖고 있는 것을 졸라 어렵사리 구해서는 성경책 갈피에 끼워놓았단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사단이 나고 말았다. 남편은 성경책 갈피에서 목사님의 사진을 발견하고는 완전히 꼭지가 돌아, “네가 단 한 번이라도 내 사진 갖고 다니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이 사진은 뭐냐?”며 그 어렵게 구한 사진을 다 찢어버리고 성경책을 집어던지며 난리를 쳤다고 한다.
목사님은 이 대목에서 껄껄 웃으시더니, “말도 마라. 그때 제사 안 지낸다고 했다가 남편에게 맞아 시퍼렇게 부은 얼굴로 와서 펑펑 울던 일들이 비일비재했지. 또 내 아내 미치게 했다며 이초석이 죽인다고 몰려왔다가 깨져서 지금은 장로가 된 사람들도 허다하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자녀들이 엄마의 신앙을 잘 따라와서 함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기도의 자리에 앉기만 하면 눈물로 남편의 구원을 위해 부르짖었고, 하루하루 더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다 남편이 사업에 문제가 생겨 태국으로 떠나게 되었는데.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어요. 핍박하던 남편이 없으니 더 신나게 더 기도하고 더 전도하니 살 것 같더라고요. 그러나 비자갱신 때문에 3개월마다 돌아오는 남편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어요. 더욱 세상과 짝하며 살고 있는 모습에 부아가 치미더군요. 아이들과 날마다 가정예배를 드리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건만 조금도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예쁘고 그토록 성령 충만했던 큰 딸이 태국에 갔다가 교통사고로 어린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병원으로 달려가 보니 아이는 의식을 잃고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누워있었어요. 의사는 이미 가망이 없다고 하더군요. 겨우 호흡만 하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남편이 오기를 기다렸어요. 생명연장을 하기보다는 하나님께 보내드리는 게 옳지 싶었지만 남편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지요. 비행기 안에서 술을 잔뜩 먹고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나타난 남편, 그런데 나를 보자 울먹이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겠어요?”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하나님, 나도 믿어볼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혼란이 말끔히 정리되었다고 한다.
‘아, 내 딸이 남편을 구원하고 갔구나.’
목사님도, 우리도 이 대목에서는 울컥하며 소름이 끼치는 느낌이었다. 하나님의 절절한 은혜에 할 말을 잊었다.
“너무나 감사했어요. 감사의 눈물로 찬송하며 딸을 하나님께 보낼 수 있었지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기에 장례식도 아주 의연하고 기쁨으로 치렀어요. 나의 그런 모습을 본 남동생은 ‘누나를 보니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느낀다’며 교회로 나오더군요. 내 어여쁜 딸은 그렇게 구원의 사명을 다하고 사랑하는 하나님 품에 안겼지요. 딸이 써놓은 일기장에는 날마다 아빠의 구원과 엄마의 사역을 위해 기도하는 구절로 가득했어요. 남편은 일기장을 보며 하염없이 울었지요. 또 교회에 나와 ‘오 예수여’를 부를 때면 하늘로부터 딸이 내려오는 환상을 본다며 더 교회로 나가는 것 같았어요. 이 역시 하나님의 은혜였지요. 보통 같으면 ‘예수에 미쳐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딸마저 죽였다’고 더 미쳐 돌아갔을 게 뻔한데, 눈물로 뿌린 씨앗은 반드시 기쁨의 단으로 돌아온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 후 권 전도사는 남편과 태국으로 들어와 치앙라이의 아카족에게 복음을 전하며 교회도 세우고, 목사님을 모셔 전도집회도 가졌다. 그 속 썩이던 남편이 변화되어 유창한 태국어로 동역해주는 오늘, 하나님은 미리 남편을 태국에서 준비시켰음을 깨닫는다. 남들은 젊고 팔팔하던 시절이 행복했다고 하겠지만, 권 전도사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남편 황종만 장로와 함께 사역하며 같이 하는 시간들이 너무도 귀하단다.
목사님은 ‘지금 황 장로가 권 전도사와 함께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먼저 낙원으로 간 딸의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요, 이는 그 딸의 상’이라고 말씀하셨다.
한 여인의 기도가, 변함없는 믿음이, 온갖 환란과 핍박을 견디며 달려온 신앙이 빚어낸 작품이었다. 남편을 믿음의 장로요, 사역자로 우뚝 세웠을 뿐 아니라 태국에 2개의 교회를 세우고, 목사님을 두 번이나 초청하여 전도집회를 열었다. 그리고 앞으로 그 복음의 물꼬가 태국 뿐 아니라 주변 동남아시아 국가들로 터져나갈 기세다. 눈물의 기도는 결코 속이지 않는다. 바로 전능의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듣고 계시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교단에는 이런 눈물의 간증들이 차고 넘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세월들을 목사님을 따라 오직 믿음으로 이겨내며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 뜨거웠던 성령의 역사가 믿음의 세대를 이어 계속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것이 우리가 믿음의 길을 나서 천국에 이르기까지 결코 잃지 말아야 할 신앙의 정수(精髓)이기 때문이다.
한은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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