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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구제는 축복의 씨앗이다 (눅6:38~39)

990호 · 2019-02-17

이스라엘에 가면 두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갈릴리 바다요, 다른 하나는 사해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그 물을 사해로 흘려보냅니다. 반면에 사해는 갈릴리 바다로부터 유입된 물을 밖으로 전혀 내보내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이렇습니다. 사방으로 물을 나누어주는 갈릴리 바다는 물고기가 풍성한 생명의 바다이지만 물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사해는 물고기 한 마리 살지 않는 죽음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나누면 없어지고 적어질 것 같지만, 나누면 더욱 풍성해지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잠11:24).

하나님은 어느 시대에나 가난한 사람이 있음을 말씀하셨고, 그들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아울러 말씀하고 계십니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15:11).

‘명하여 이르노니’, 즉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주군의 명령을 어기면 마땅한 형벌을 받는 법, 그래서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이 합당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은 믿는 자 중에서 옳은 자와 그른 자에 대한 심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천사와 함께 다시 이 땅에 오실 때, 양은 주님의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신다고 했습니다. 그럼 누가 주님의 오른편에 설 양이냐? 주린 자에게 먹이고, 벗은 자에게 입히고, 목마른 자에게 마시게 한 자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왼편에 설 염소는 주린 자를 보고도 못 본 체하고, 벗은 자를 두고 자기만 잘 입은 자이며, 목마른 자들을 나 몰라라 하고 저만 목을 축인 자입니다. 그러면 ‘언제 주님이 헐벗고 주리셨습니까? 언제 옥에 들어가셨고 병원에 입원하셨습니까?’ 하고 따지는 자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25:45).

영생에 들어가는 복만 받는 게 아닙니다. 이 땅에서도 구제는 축복의 씨앗이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사도행전 10장에 고넬료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 군대 100명을 이끄는 백부장이었습니다. 이방인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로 그의 집에 찾아가 성령을 부어주도록 하셨습니다.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최초의 사람입니다. 이는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정확히 짚어줍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행10:4).

사도행전 9장도 보겠습니다. 거기에는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나옵니다. 그 역시 고넬료처럼 노인과 과부에게 많이 구제한 사람입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겉옷과 속옷을 많이 지어준 것 같습니다. 그런 그가 죽자 마을에 난리가 났습니다. 그의 도움을 받은 자들이 다 슬퍼 통곡했고, 몇몇 제자들은 급히 베드로를 청하여 어떻게든 살리고자 했습니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그가 지어준 속옷과 겉옷을 보이며 ‘선생님, 우린 이제 어떡하냐?’고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죽은 다비다에게 가서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했고, 다비다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구제한 것을 기억하사 살리신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죽었을 때 그 사람의 진가가 드러난다고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죽었을 때 얼마나 많은 성도와 이웃이 달려와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할까요? 혹시 “그 사람 잘 죽었어! 인색한 사람이었어.”라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까요?

여러분, 구제(救濟)는 건질 구(救), 건널 제(濟)로 어려운 형편에서 구해줘서 그 어려움을 건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속담에 ‘물에 빠진 놈 건져주면 보따리 내놓으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에 빠진 놈 건져줘 봐야 이상하게 얽혀서 손해 본다는 말입니다. 이 속담은 잘못된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면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대박이 납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 못본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잠28:27). 그들에게 기업자금을 주라는 이야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빚내서 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 끼니가 없는 자에게 쌀 한 되라도 주라는 겁니다. 연탄 몇 장 사줘도 됩니다. 없어서 못 배우는 자들에게 재능을 기부해주라는 겁니다. 우리 교회도 많은 구제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우리가 파라과이에 수십만 벌의 옷을 보냈습니다. 헌 옷을 잘 빨고 수선하여 보낸 겁니다. 그랬더니 이에 감동한 파라과이 대통령이 저를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했고, 파라과이 예수중심교회에 어마어마한 땅을 제공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 하나님은 거짓말을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구제는 우리에게 풍요로움과 축복을 가져다줍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11:25),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15:10).

구제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3:17~18).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볼까요?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자를 보고는 사랑을 가르친 제사장도 그냥 지나가고, 당연히 사랑을 실천해야 할 레위인도 피하여 갔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으로 여기는 사마리아인은 그를 주막으로 옮기고 주막 주인에게 부탁하여 보살핍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사랑을 입으로만 말하지 말고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10:37)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랑이 없는 구제를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3). 혹자는 구제하는데 설마 사랑이 없겠느냐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있다마다요. 자기 의를 드러내려고 하는 구제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6:2~4)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씨앗을 뿌리지 않고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심어야 납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나고, 적게 심으면 적게 나는 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대신 가난한 자를 도와주기를 원하십니다. 일할 때 연장을 주지 않는 주인이 없듯 구제하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구제하기를 즐겨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축복해주셔서 더욱 일하게 하십니다. 자선사업과 기부를 기업의 목표로 정한 세계 제일의 부호인 록펠러와 빌 게이츠의 삶에서 깨닫기를 바랍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눅12:33). 할렐루야!

부자로 살 것인가

부자로 죽을 것인가

인색한 자식은

부모도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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