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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회복 탄력성 키우기

989호 · 2019-02-10
세상을 보는 창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밑바닥까지 떨어져도 꿋꿋하게 다시 튀어 오르는 능력’이다. 나무로 만든 공은 탄성이 약해서 바닥을 치고 튀어 오르지 못한다. 유리로 만든 공은 바닥에서 깨어져 무용지물이 된다. 그러나 탄성이 강한 공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바닥을 치고 더 높이 튀어 오르듯이, 갑작스런 인생 역경으로 인해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 기적처럼 다시 회복된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인생의 바닥에서 무너지지 않고 다시 바닥을 치고 올라갈 수 있는 힘이 회복탄력성이다.

우리에게도 신앙의 회복탄력성이 요구된다. 길가의 꽃들이 사람들의 손에 의해 한순간 꺾이듯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공동체에서 넘어지거나 쓰러지는 경험을 적어도 몇 번은 반복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허들 앞에서 헉헉거리며 넘어질 것인가? 가뿐히 인생의 허들을 뛰어넘어서 도약의 기회로 삼을 것인가? 인생의 허들을 가뿐히 뛰어넘는 힘은 회복탄력성에 있다고 말하기에 우리는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신앙의 회복탄력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의 회복탄력성을 만들어갈 능력이 없다. 다만 키워나갈 뿐이다. 어떻게 키워나갈 수 있을까? 먼저, 자아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내면에 하나님의 자녀,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 하늘나라 시민권자라는 정체성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확고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사도 바울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위험에 처하고 부당한 대우를 수없이 당했어도 다시 복음을 들고 이방인의 사도로서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다. 사도 바울은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이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하였던 다윗도 죄 가운데 쓰러진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나단 선지자의 책망 앞에 옷을 찢고 간절히 회개하며 다시 그 믿음을 회복했다. 그런데 사울은 불순종의 죄 가운데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했다. 사무엘 선지자의 책망 앞에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다윗은 회복탄력성이 강한 농구공 같은 사람이었다면, 사울왕은 회복탄력성이 약한 유리공 같은 사람이었다.

2019년에는 사도 바울과 다윗처럼 신앙의 회복탄력성을 키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한다.

이정금 전도사

jungkm@nate.com

삶이 있는 이야기

무화과 반죽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왕하20:7). 병에 걸려 죽게 된 히스기야 왕을 하나님이 살리시는 장면이다. 그의 병이 암이었는지 종창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당연히 무화과가 명약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장 특효약을 구해오라고 명령하여 누군가 무화과 반죽을 가져왔다면 그것이 그의 병을 낫게 했을까. 그는 죽음 앞에서 왕으로서의 권력, 재력, 인재들을 의지하지 않았다. 그것들을 등지고 오직 벽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애통하여 기도했다.

힘든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마다 무화과 반죽을 생각한다. 우리는 당장 해결책을 달라는 기도를 많이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먼저 차분하고 진실된 대화를 원하신다. 대화를 통해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려는 것이다. 일단 문제를 완전히 하나님 앞에 내려놓게 하신다. 사람, 돈, 일, 나 자신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것이니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내 것인 줄 알았던 것이 내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힘겹게 문제를 주 앞에 내려놓고 나면, 내가 보이지 않게 의지하는 대상들을 하나씩 걷어내고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신다. 이 과정은 끝없는 터널 같아서 믿음의 등불만 들고 가기엔 힘에 겨워 때론 불평을 쏟아놓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의 작은 믿음을 붙드셔서 터널을 통과하도록 끌어주신 후에야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주신다. 비로소 무화과 반죽을 받은 것 같은 확신과 기쁨을 갖는다. 이 때 하나님은 세상 무엇이든 들어서 쓰신다.

100%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때론 무모하고 고집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흔들리지 않고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무화과 반죽이다.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허락하심을 구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손가락질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마음을 정확하게 저울질하고 계신다. 지금 손에 쥔 무화과 반죽이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는 하나님과 자신만이 알 것이다.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사38:5).

이호은 사모

내가 매일 기쁘게

내가 어느 곳에 있다 하여도

요즘 베트남에서 최고 인기 있는 한국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쌀딩크’.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박항서이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감독으로 부임한 뒤에 베트남은 작년 한 해에만 여러 가지 기록을 새롭게 썼다. 베트남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결승에 진출하였고, 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최초로 준결승에 진출하였다. 12월에는 2018 아세안축구연맹 스즈키컵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멋진 한해의 마무리를 장식하였다. 그리고 며칠 전, 10여 년 만에 아시안컵 8강 진출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멋지게 장식하였다. 이로 인해 베트남에서 박항서 감독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올라가고 있으며, 그 열기 또한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베트남에서 연일 전해져 오는 이 ‘박항서 매직’은 다름 아닌 기도의 열매임을 기억해야 한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은 선교가 쉽지 않은 나라 중의 한 곳이다. 하지만 경기 시작 전후에 기도하는 박항서 감독의 모습이 현지 TV에 그대로 송출되면서 그 어떤 선교보다 더 효과적으로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 덧붙여 선수 한 명 한 명을 아끼고 존중하며 언제나 겸손한 그의 모습을 보고는 사람들이 박항서 감독이 기독교인이냐고 묻는다고 한다. 절실한 크리스천이라고 이야기하면 물었던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어쩐지…’라고 수긍한단다.

비행기로 5시간 반 정도 걸리는 먼 나라 베트남에서 박항서 감독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최대치로 수행하면서 동시에 크리스천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박항서 감독의 기도하는 모습은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장소가 어디이든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한결같은 자세로 기도하는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은혜로 다가온다. 성경 속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처럼, 박항서 감독도 자신이 머무는 곳이 어디이고 그 때가 언제이든지 진실로 주님을 향해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항서 감독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그가 크리스천이라는 말에 ‘어쩐지…’라고 수긍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도 나를 돌아본다. 내가 언제 어떤 장소에 있을지라도 주님의 자녀임이 드러나는 삶을 살고 싶다. 그곳이 어디더라도 나의 기도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며, 주님을 향한 사랑 역시 멈추지 않을 것이다. ‘큰 자가 되기 전에 깨끗한 자가 되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항상 기억하여 나의 행동과 말이 곧 크리스천임을 나타낼 수 있도록, 나의 존재 자체가 주님의 선한 영향력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내가 세상으로 나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그리 살고 싶다.

전훈지 집사

ppjee@hanmail.net

Good News

이탈리아에 있는 토리노박물관에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조각과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이상하게 생긴 동상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앞머리는 무성한 장발이고 뒷머리는 문어처럼 대머리이고 양발 뒤꿈치에는 날개가 달려있다고 합니다.

그 신상의 이름은 ‘기회의 신’인데, 앞머리가 무성하고 뒤에 머리카락이 없는 것은, 기회는 다가왔을 때 잡아야지 지나가고 나면 잡을 수 없다는 뜻이며, 발꿈치에 날개가 달린 것은 빨리 지나가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우매한 인생의 착각 중에 하나는 인생이 아직도 충분히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실제로 지나온 세월들을 뒤돌아보면 엊그제 같았는데 날아온 것처럼 빨리 지나왔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젊다고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죽을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인생의 남은 시간표를 우리가 알 수 없기에 가장 시급하게 준비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안락한 노후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죽은 뒤의 영원한 세상을 준비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 받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을 만나야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빛이 되리라

속한 곳에서 복을 받자

청·장년부를 섬기는 임원으로서 회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다른 곳에서 복 받을 일을 찾기보다 우선 본인이 섬기고 있는 이 부서에서 먼저 복을 받자.”라고 말이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전 세계에 수많은 교회가 있고, 수없이 더 많은 작은 부서들이 있을 것이다. 각각의 부서들이 그 부서의 역할을 잘 담당하려고 노력하고 비전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고 있겠지만, 그 부서에 속해 있는 지체들 입장에서 보면 아주 간단한 한 진리가 있다. 바로 하나님이 이 부서를 통해서 우리가 하늘의 상급을 쌓을 수 있도록 일거리를 주고 계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복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지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의 통로로 직분을 주시는 경우가 많다. 직분을 통해서 더 많은 할 일을 주시고 기도하게 하시며 그 일을 통해 축복하시려고 하는데, 그렇게 기도는 하면서 막상 직분을 받기는 주저하고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 어떻게 복을 주실 수 있을까?

교회는 다니지만 어느 부서나 교구에도 속해있지 않다면 무리에서 떨어진 양 같이 포식자의 쉬운 표적이 될 수 있다. 혼자만의 신앙생활, 우리 가족만의 신앙생활보다도 공동체 생활을 통해 단합하고 섬기며 모이기에 힘쓰면 삼겹줄처럼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꼭 어느 부서나 교구에 속해 있으면서 그 곳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여러 일들을 헌신과 사랑으로 감당하려고 노력해보자. 이미 직분을 받았다면 그 직분을 잘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자. 그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리고 그 부서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과 생각에 따른 헌신을 반드시 기억하시고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부어주실 것이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장명훈 집사

jjoshua@hanmail.ne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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