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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적 사고

989호 · 2019-02-10

중간을 허용하지 않는 극단적인 선택을 요구하는 것으로, 모든 사물이나 생각 등의 대상을 옳고 그름, 정상과 비정상 등, 이렇게 두 부류로만 구분하는 것을 ‘이분법’이라고 한다. 이분법적인 사고는 다양성을 무시한다. 이분법적인 사고를 흑백논리라고 부르는 것에도 알 수 있듯이 너무 획일화된 사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총천연색 TV를 두고 흑백 TV를 보는 것과 같다. 거기에는 창의력이 없고, 토론의 여지도 없는 답답한 사고다. 현대를 사는 사람에게 이 이분법적 사고는 뛰어넘어야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꼭 이분법으로 되어 있는 것이 있다. 바로 하나님 법 안에서다. 하나님의 법은 천국이냐 지옥이냐, 상이냐 벌이냐, 축복이냐 저주냐, 빛이냐 어두움이냐다. 하나님의 말씀에 Yes냐, 아니면 No냐다. 이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이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 중간은 없다.

하나님은 분명하신 분이다. 회색분자, 양다리 걸친 자, 다시 말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을 싫어하신다. 요한계시록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5~16)는 말씀은 그분의 성격을 잘 대변하고 있다. 여호수아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택하든지 우상을 택하든지 확실히 하라고 촉구하는 장면이 여호수아 24장에 나온다. 송아지는 엄마 소 닮는 법이니까.

세상은 융통성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추구한다. 그래야 탈 없이 살 수 있다. 그러나 신앙에는 타협도 없고, 어중간도 없다. 결국 하나, 영생이냐 영멸이냐다. 적당히 신앙 생활하는 자나 한 다리는 세상에, 한 다리는 교회에 걸치고 사는 자는 장담컨대 다리 찢어지고 말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신앙은 취미나 교양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반드시 열심히 해야 할 일이기에 분명해야 한다.

당신의 신앙은 어떤가? 지금 점검하라. 그날 주님은 이분법으로 심판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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