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수님의 자존심
오래 전의 일이다. 일본교회의 목사가 건물주와 문제를 일으켰다. 나는 급히 일본으로 날아가 건물주인 야쿠자 오야붕을 만났다. 그를 보자마자 나는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야쿠자 오야붕은 깜짝 놀라 “이렇게까지 하실 일은 아니다.”라며 되레 나를 일으켰다. 일을 마무리 짓고 나오는데 함께 갔던 전도사가 “목사님, 무릎까지 꿇으셔야했어요? 순간 울컥 했어요.”라고 하기에 내가 이렇게 말해줬다. “우리 교단과 교회는 내 자존심이다. 자존심을 지키려면 자존심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11장에 한밤중에 찾아온 벗에게 먹일 것이 없던 자는 다른 벗을 찾아가 문을 두드린다. 결국 그는 떡 세 덩이를 얻어 찾아온 벗의 배를 채운다. 그는 자존심을 버려 자존심을 세웠다.
자존심(自尊心), 그것은 나 자신이며, 내 인격의 마지노선이다. 그래서 자존심이 밟히면 싸우고, 울고불고, 심지어 자존심과 목숨도 바꾸는 것이다.
기업이 만든 물건은 그 기업의 자존심이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불리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신경영 시대는 바로 삼성의 물품이 진열대에 오르지 못한 자존심 파괴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인간은 하나님의 자존심이었다. 하나님이 손수 만드셨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이 파괴되고 악한 것들에게 놀아나는 꼴을 보는 것은 하나님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자존심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서 인간을 구원하신 것이다. 당신의 자존심을 버려 자존심을 회복하신 것이다.
나는 우리 목사들, 직원들에게도 ‘매사 최선을 다해라, 정도를 가라.’고 강조하는데, 이는 그들이 나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존심이다. 그 분이 자존심을 버려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우리는 그 분의 자존심이다. 그런데 맘대로 엉망으로 살아 세상 사람에게 지탄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더 이상 예수님의 자존심에 금가는 일, 하나님의 자존심을 구기는 일은 하지 말자. 우리를 위해 자존심을 버리신 그 분의 자존심을 이제는 지켜드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