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능력
“아니, 여태 짐을 안 싸고 뭐하고 있니?”
“엄마가 싸줘야 해요.”
“헐, 대학생이나 된 녀석이, 더구나 한두 번 다닌 것도 아닌데 여적 엄마가 해줘야한다는 게 말이 돼?”
“엄마가 해줘야 깔끔하게 잘 쌀 수 있단 말예요.”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갈 때면 늘 반복되는 딸과의 대화다. 제 딴에는 아무리 잘 싸보려 해도 엄마가 해주는 만큼 안 되는지 요맘때만 되면 엄마에게 SOS다. 비행기에 실어야 하는 짐이라는 것이 23kg을 넘게 되면 돈을 더 내야하는 관계로 어떻게 하면 최대한 넣되 넘지 않게 싸느냐가 관건이다. 그래도 국내항공사는 약간의 유두리가 있지만, 외국항공사는 짤 없다. 그래서 몇 번인가 체크인카운터 앞에서 가방을 열고 짐을 줄여보느라 낑낑거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두세 번의 시행착오 후에는 기가 막히게 중량을 맞춰 싸는 실력이 오직 엄마에게만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다. 아빠는 그저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존재, 엄마는 문제해결사, 뭐 이런 의식이 딸의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된 것 같다. 섭섭해도 인정할 수밖에.
아이를 낳고 20년 넘게 살다보니 참 신기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서 그러하다. 자식에 대한 무한사랑의 정도도 아빠랑은 비교할 수가 없고, 내가 보기에 집사람이 그리 똑소리 나는 스타일도 아닌데 딸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차원에서 보면 거의 원더우먼 수준이다.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다느니, 아빠가 더 좋다느니 하는 딸의 멘트에 흐물흐물해지는 게 아빠들이라지만, 그건 별 문제 없을 때 하는 이야기이고, 결국에는 엄마의 손길이 절실하고, 또 반드시 거쳐야 깔끔히 정리가 되곤 한다.
이 또한 하나님이 주신 섭리일까? 자식을 피 흘려 낳은 것은 아빠가 아닌 엄마이기에 자식에 대한 생각자체가 다르다고 하는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가 무엇인지 영국문화협회에서 비영어권 102개 국가에 설문조사를 했더니 1위가 ‘mother(엄마, 어머니)’였단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대답이다. 그래서 그럼 ‘father(아빠, 아버지)’가 2위인가 했더니 천만의 말씀, 10위권 안에도 없었고, 심지어 70위권 안에서도 찾을 수 없어 찾기를 포기했다고 고(故) 황수관 박사는 마지막 강의에서 말했다.
어머니의 무한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공감케 하는 이 땅의 잣대가 되곤 한다. 10개월간 입덧과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산통으로 피 흘려 낳은 자식에 대한 무한애정은 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의 힘이다. 예수님의 무한사랑은 끔찍한 십자가형의 고통으로 모든 피를 쏟은 결과이기에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절대사랑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눈물로 고백한다.
“주님만이 나의 힘, 나의 방패 나의 참 소망, 나의 몸 정성 다 바쳐서 주님 경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