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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믿는 데가 있으면 두려움이 없다(수1:5~18)

958호 · 2018-07-08

성경에는 ‘강하고 담대하라’, ‘무서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는 말씀이 365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매일 매일 담대하라’, ‘극히 담대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를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는 매일 두려움에 사로잡혀 산다는 말이 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사나’, ‘뭘 해야 하나’…, 이렇게 장래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매일 살면서 안전에 대한 불안과 건강에 대한 두려움, 빠듯한 생활 등 현재에 대한 두려움이 늘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험을 들고, 저축을 하고, 자격증을 따고, 이력을 쌓는 등, 뭔가 믿는 구석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믿는 구석이 있으면 두려움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선교사이자 저의 러시아어 통역관인 슬라바 목사가 손녀를 한국으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아직 어린 손녀를 이국땅에 맘 놓고 보낸 것은 믿는 데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접니다. 그가 제게 ‘손녀를 잘 부탁한다.’고 전화했을 때 제가 뭐라 그랬겠습니까? ‘걱정 마.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라고 했습니다. 그럼요, 믿는 것이 있으면 걱정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뭘 믿고 삽니까? 당신이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가 단호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현재에 대한 두려움, 장래에 대한 불안은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냥 ‘강하고 담대하라, 무서워말고 놀라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꼭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말씀을 뒤에 붙이셨습니다. 전지전능하셔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는 하나님, 아니 계시는 곳이 없으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걱정 끝, 두려움 끝, 고민 끝 아닙니까?

거인 골리앗을 상대한 어린 다윗은 믿는 데가 있어서 담대했습니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바로 만군의 여호와가 함께 하심을 믿었기에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앞날이 걱정되십니까? 그래도 아브라함보다야 더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지시한 땅’이 아니라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으니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의외로 담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장사가 잘 되려나?’, ‘경쟁이 센데 이게 잘 될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까? 이삭의 종들이 우물을 파는데, 파는 우물마다 물이 솟구쳤습니다. 샘의 근원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러자 그랄 목자들이 자기네 것이라고 우겼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삭은 다투지 않고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거기서도 물이 펑펑 나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삭이 수맥을 잘 찾아서입니까? 아닙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창26:24).

상황이 막막합니까?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까? 야곱이 그랬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은 형을 피해 외가로 도망치게 됩니다. 도망 길에 루스(벧엘)라는 곳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려고 하는데 그 때 하나님이 나타나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5). 그의 인생이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습니까? 요셉을 볼까요? 형들에 의해 애굽의 노예로 팔렸지만, 요셉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늘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창39:23). 그래서 그는 가는 곳마다 형통했고, 노예 신분에서 애굽의 총리대신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에게 바통을 물려받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수1:5~6).

모세도 역시 여호수아에게 동일한 유언을 합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로 그 땅을 얻게 하라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신31:7~8).

사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자였습니다. 그는 일찍이 가나안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열 명의 부정적인 자들이 그 땅에 들어갈 수 없을 거라고 했을 때 옷을 찢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4:9).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두려워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하나님이 함께할 것이고, 우리가 강을 건널 때에 물이 우리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우리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우리를 사르지도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사43:2~3). 다니엘이나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가 그 샘플 아닙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녀도 다윗이 담대했던 것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로 항상 함께함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아들 솔로몬에게도 담대함을, 담대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말합니다. “너는 강하고 담대하게 이 일을 행하고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여호와의 전 역사의 모든 일을 마칠 동안에 여호와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사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대상28:20).

사도 바울이 환난과 곤고와 핍박과 기근,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롬8:31).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던 느헤미야가 도비야와 산발랏이 훼방하고 협박하자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느4:14)고 백성들을 독려했음을, 또한 기드온의 300명 용사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메뚜기처럼 많은 미디안 군사를 다 쳐부술 수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슬라바 목사와 저는 2003년 키르기스스탄 집회 때 KGB에 끌려간 적이 있습니다. 울던 아이도 ‘KGB하면 울음을 그친다’던 바로 그곳 말입니다. 슬라바 목사와 저는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한참을 대기했습니다. 그러나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KGB 요원을 만났을 때 저는 담대하게 “할렐루야!” 하고 악수를 청했고, 슬라바 목사는 러시아어로 “이 목사님은 세계 72개국에 복음을 전하시는 분이다. 이 목사님을 건드리면 세계가 당신 나라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저와 슬라바 목사의 담대함이 어디에서 나온 겁니까? 항상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갈릴리 바다에 풍랑이 일자 무서워 난리를 치며 주무시던 주님을 깨운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8:26)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하나님으로 일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늘 여러분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두려워말고 담대하십시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12:2). 할렐루야!

두려움은

삶의 암적 존재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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