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반사체
::세상을 보는 창:
미국의 100달러 지폐에 얼굴이 있을 만큼 매우 존경받는 벤자민 프랭클린은 젊은 시절 ‘동네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집 앞에 선반 하나를 만들어 그 위에 등을 올려놓고, 날이 어두워지면 그 등에 불을 켜두는 일을 했다. 처음에는 동네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등을 집 안에 두고 불을 밝혀야지, 왜 밖에다 켜놓는 거야?’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집 밖에 켜둔 등불로 인해 길이 환해져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되었고, 멀리서도 방향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도 하나 둘씩 자신들의 집 밖에 등불을 켜두기 시작했다. 이것이 오늘날 가로등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은 고도화된 산업화와 도시화로 핵가족 사회가 되면서 어른이 사라지고, 어른에게 배우던 지혜는 스마트폰이 대신하고, 가정이 무너지며 급격한 변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울증과 자살,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등 사회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부자는 많아도 깨끗한 부자가 없고, 지도층은 있어도 존경할만한 사람이 없다. 물신주의 사회는 극단적 이기주의로 치닫고, 자식이 부모를 거역하며, 고독사, 안전 불감증에 노출되어 사는 게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다.
이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과의 소통이며 관계회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주님은 빛을 직접 내시는 발광체(發光體)이시고, 우리는 그 빛을 받아 빛을 내는 반사체(反射體)이다. 주님은 발광체이시기 때문에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있지만 우리들은 반사체이기 때문에 빛을 받아야만 빛을 발할 수 있다. 보름달이 아무리 밝다 해도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다. 태양이 내는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것이다.
해바라기의 가장 큰 특징은 햇빛을 따라서 움직인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주님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주바라기’다.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으로부터 빛을 받을 때, 우리는 세상에 빛을 발하며 빛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반사체가 되어 빛을 발하며 살아보길 소원한다.
이정금 전도사
jungkm@nate.com
부지중의 나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남자다운 인상 덕분에 지하철 잡상인들을 쫓아내는 부서에 차출되었다. 선임이 역사 내에서 장사하는 잡상인들을 고압적인 말과 험한 말로 쫓아내는 시범을 보여주었는데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하나님의 사람이 어찌 세상 사람과 똑같이 할 수 있을까.
나는 잡상인들에게 들어온 민원을 설명해드리며 설득해갔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다. 근데 유독 몇 분이 몰래 다시 돌아와 계속 장사하셨다. 그 중 특별히 끝까지 버티시는 할머님이 계셨는데 아무리 말씀드려도 듣는 둥 마는 둥하시며 “총각, 이쁘게 생깃네. 결혼은 했구?” 하며 계속 말을 돌리셨다. 결국 “할머님, 많이 힘드시죠. 우선은 이거 갖고 점심 드시고 이따 오셔요. 제가 근처에 장사하기 좋은 장소 알아다가 알려 드릴게요.” 하며 수중에 있던 내 점심 값이자 전 재산, 만원을 드리며 보내드렸다.
그리고 한주 후, 주일이 되어 노숙자와 어르신들을 모시는 3부 예배를 드리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어, 총각!” 하고 누군가 불렀다. 그 할머님이셨다. “아니, 이쁜 총각이 여기 어쩐 일이여?”, “할머님, 저도 이 교회 다녀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할머님이 내 손을 붙잡고 말씀하셨다. “내가 그날 총각이 쥐어준 만원이 너무 고마워서 오늘 총각 잘되게 해달라고 울면서 기도했는데 총각도 이 교회 다녔어? 역시 우리 교회가 최고야. 하나님 믿는 사람이 최고야.” 하며 내 손을 붙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시는 게 아닌가.
순간 아찔했다. 사실 난 지난 한 주간 갈등했다. 말을 잘 안 듣는 분들 때문에 추운 곳으로 빈 책상을 끌고 나가 자리를 지키며 한편으로 ‘나도 그냥 선임이 가르쳐준 대로 조금 세게 나가고 편하게 근무할까’ 생각했었는데, 그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순간 히브리서 말씀이 머리에 울렸다. ‘부지중에 나(천사)를 대접하는 자가 있다.’
“그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 주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듣게 될 말이다. 이 말이 누군가에게는 징계의 음성으로, 누군가에겐 칭찬과 자랑의 음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 칭찬의 면류관을 받는 삶이 되자.
이은총 전도사
unjena7@hanmail.net
10여 년 전 터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방목한 양을 치던 목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 한 마리가 무리에서 이탈하여 벼랑을 향해 갔습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양들이 그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손 쓸 틈도 없이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무려 450마리의 양이 절벽 위에서 떨어져 죽고, 1,000마리가 넘는 양들이 다치는 대형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을 ‘양’으로 비유했는데, 양은 지극한 약시라서 혼자서는 길을 찾아가지 못합니다. 목자의 인도함 없이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던 양떼들처럼 한치 앞도 볼 수 없고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입니다.
길을 잃은 양떼들과 같은 우리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시종을 알지 못하는 우리 인생, 한 번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이요, 죽음 뒤에는 반드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심판을 통과하기 위한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천하 인간에게 예수 외에는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 오직 한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인도자가 되어 이 땅에서도 지켜줄 것이며 영생복락의 천국으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중국 국경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 노인에게는 아끼는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이 그만 오랑캐의 땅으로 도망을 가고 말았다. 사람들은 노인을 위로했지만 노인은 ‘이 일이 복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몇 달 뒤 도망쳤던 말은 암말 한 필을 데리고 나타났다. 사람들은 노인의 말이 맞는다며 축하했으나 노인은 ‘이 일이 화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얼마 뒤 노인의 아들이 말을 타다가 낙마하여 다리가 부러졌다. 사람들이 위로하였으나 노인은 ‘이 또한 복이 될 수 있다’며 크게 요동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후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전쟁이 일어났다. 마을의 젊은이들은 모두 전쟁에 나갔지만 다리가 다친 노인의 아들은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됐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한다. 살다보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생기기 마련이지만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그 때마다 너무 마음이 요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나는 새옹지마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임신성당뇨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서 말하기를 혈당수치가 높으면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이 좋지 않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너무 속상하고 힘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참 감사한 일이다. 이로 인해 우리 가족의 식습관이 더욱 건강하게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한 입덧시기가 지나고 평소 먹지 않았던 단 음식들, 군것질을 많이 했었다. 여자들은 평생 숙제가 다이어트라고 할 만큼, 살면서 다이어트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임신 중에는 ‘아이가 먹고 싶어서’라는 핑계로 살찔 걱정을 하지 않고 마음껏 먹게 된다. 그래서 나도 안일했던 것 같다. 임신성당뇨라는 진단을 받은 후 하루 4번씩 혈당 체크를 해야 해서 힘들기는 하지만 다행히 음식 조절과 운동으로 충분히 관리가 가능하다. 그래서 요즘 건강한 음식들을 먹고 운동을 하며 관리하고 있다. 내 몸이 건강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뱃속에 태아도,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남편과 아이까지 모두 건강한 식습관으로 다 같이 건강해지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건강하려면 평소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한 끼 정도는 괜찮겠지’라며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곤 했었다. 그런데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큰 깨달음을 주셨다. 아내, 그리고 엄마인 나에게 가족의 건강이 달려있다는 것도 깨닫게 해주셨다.
하나님은 이처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이번 일을 통해 귀한 것을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정효경
happy_holly@naver.com
섬기는 리더십!
어느 교회에서 가족화합 찬송가 경연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가정이 찬송가를 부르다가 그만 가사를 틀리게 불렀습니다. 교인들은 킥킥대며 웃었고 찬송을 부르던 집사님은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숙인 채 자리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다음 차례는 목사님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긴장한 탓인지 이번엔 목사님이 가사를 틀리게 부르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여기저기서 킥킥대며 웃을 때 좀 전에 찬송 가사를 틀리게 불렀던 집사님도 환하게 미소를 짓습니다. 그렇게 찬송 경연대회는 끝났습니다.
세월이 얼마 흐른 후 목사님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나라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장로님들과 사모님이 함께 유품을 정리하다 목사님의 일기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날짜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찬송가 부르기 경연대회가 있었다. 김 집사님 가정이 찬송가 가사를 틀리게 불렀다. 온 교인들이 웃자 김 집사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발갛게 변했다. 그 다음 차례는 우리 가정이었다. 나는 일부러 가사를 틀리게 불렀다. 온 교인들이 웃었다. 가사를 틀리게 부른 집사님의 얼굴을 보니 ‘목사님도 틀리는데 나쯤이야.’ 하는 미소를 짓는다. 나는 오늘 하나님만 알게 김 집사를 기쁘게 해주었다.” 이 일기의 내용이 알려지자 목사님의 따뜻한 사랑에 온 교인들은 모두 숙연해졌습니다. 소박하지만 이 가슴 뭉클한 목사님의 일기처럼 우리의 삶도 정리되는 그 날에 뭇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는 너그러움이 있는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회자가 설득과 감화와 동기부여를 잘해야 성도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더 잘 섬긴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이 함께 보게 하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성경적 리더십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4~15)는 우리 주님처럼!
김정옥 전도사
jcc011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