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결과를 몰고 다닌다(요14:12~17)
과거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지금은 거의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한 예로 자율자동차가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곧 하늘을 나는 자동차도 선보인다고 합니다. 이것을 만든 사람들은 늘 사람이 일일이 작동하지 않아도 되는 자동차에 대해, 또 정체된 도로가 아닌 뻥 뚫린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는 자동차에 대해 깊이 생각했고, 그 결과가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형상화된 모든 것들은 모두 비형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난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3).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니까 빛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장엄한 선포 이전에 하나님의 생각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마15:18). 그래서 저는 사람을 볼 때 외모나 학력으로 보지 않고 그 사람의 말을 듣고 판단합니다.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 사람들의 말은 심히 부정적입니다. “그건 안 됩니다.”, “이건 못합니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많습니다. 말이 그렇다는 건 생각도 그렇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뭘 이뤄내겠습니까?
여러분, 생각이 결과를 몰고 다닙니다(렘6:19). 생각이 운명을 좌지우지합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8:5~6). 육신의 일을 생각하면 육신을 일을 좇게 되어 마침내 사망이란 결과를 몰고 오고, 영의 일을 생각하면 영의 일을 좇게 되어 생명과 평안이라는 결과를 몰고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에만 국한된 말일까요? 아닙니다.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생각은 마치 임신한 것과 같습니다. 처음 아이를 갖게 되면 여아(女兒)인지, 남아(男兒)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엄마 뱃속에서 자라면서 눈이 생기고 손도 생기고 마침내 열 달 후면 완전한 생명체가 되어 이 땅에 여자·남자로 태어나듯이, 부정의 씨를 뿌리든, 긍정의 뿌리든 처음에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의 씨가 자라 싹이 나고 줄기가 나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절대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성취’라는 자식을 낳고, ‘못한다,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패배’라는 자식을 낳습니다. 돌연변이나 이변은 절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동안 되는 일이 없었습니까? 생각부터 바꿔야 합니다. ‘경기가 안 좋아서 사업이 안 돼.’라는 생각을 버리고 ‘천인이, 만인이 안 돼도 나는 된다.’라는 생각으로 바꿔야 합니다. ‘병원에서는 죽는다고 했지만, 나는 산다.’는 생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 생각대로 결과가 나타납니다. 마가복음 5장에 열 두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고 나음을 입었습니다. 왜 나았을까요? 그녀가 예수님의 옷을 만질 때 예수님의 능력이 최대치여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막5:28)는 그녀의 생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그런 생각이 없었기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똑같이 만졌어도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무가 병들었을 때 가지를 친다고 나무가 살아나는 게 아닙니다. 뿌리를 점검해야 합니다. 뿌리가 썩은 나무에 물을 주면 더 썩습니다. 근원, 곧 마음과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병든 인생에 회생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담이 마음을 지키지 못해 죄를 지었고, 그 결과 에덴에서 쫓겨난 것 아닙니까?
자고로 사람의 생각은 늘 부정 쪽에 가깝습니다. 내 안에 두 마리 짐승이 늘 살고 있습니다. 부정이라는 놈과 긍정이라는 놈입니다. 그런데 어느 놈이 더 셀까요? 먹이를 많이 준 놈이 분명 셀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부정이란 놈에게 먹이를 많이 줍니다. 그래서 부정이 긍정을 이기게 합니다. 왜냐하면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 마귀가 부정을 주입하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을 팔 생각을 가져다 준 것이 바로 마귀인 것 아시죠(요13:2)?
그러므로 부정적인 생각에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회의적인 생각에서 희망적인 생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사람의 힘으로나 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으로 살게 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보다 더 큰일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감히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보다 더 큰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16:7), 이는 예수 이름으로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으로 살게 됩니다. 그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하나님(눅18:27)이 우리 안에 성령으로 계시면 우리는 이런 믿음의 말을 하게 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천사가 처녀 마리아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말했을 때, 마리아는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며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연한 사람의 생각이지요. 그러나 천사는 마리아의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눅1:35).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곧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너를 덮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유가 합당할지 모르지만, 요즘 휴대폰에 들어있는 유심칩(usim chip)만 바꾸면, 남의 것이 내 것이 되는 것처럼 내 무능함을 빼버리고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내 안에 모시면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도 임하여 불가능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서는 안 되지만, 성령을 받은 우리에게 불가능이 없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고백한 것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여러분, 성령을 받은 우리의 생각을 제한하는 것은 결국 성령을 제한하는 것이고, 이는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고 했고, 다른 표현으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고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약속하시고, 성령으로 우리 안에 계시는데 지금도 ‘못한다’, ‘안 된다.’, ‘이건 불가능하다.’라고 말하시겠습니까?
세계 최대의 갑부 빌 게이츠는 1년 중 2주를 생각의 주간으로 정하고 숲속 오두막집에 들어가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 생각이 인류발전에 기여하게 된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투자자 워렌 버핏은 1년 중 50주는 생각을 하고 일은 2주만 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생각의 힘이 크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생각을 바꾸세요. 생각의 한계를 벗어던지세요. 생각이 당신의 운명을 바꿀 것입니다. 자동차의 핸들이 운전자가 돌리는 대로 방향을 틀듯, 당신의 생각대로 인생의 자동차가 질주할 것입니다. 어느 쪽으로 핸들을 돌리시렵니까? 부정으로, 아니면 긍정으로? 할렐루야!
호랑이를 생각해야
고양이라도 그린다
도토리 씨 안에는
참나무가 들어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