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境界人)
경계인이란 말이 있다. 경계에 서서 필요할 때마다 이쪽저쪽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사람, 우(右)도 아니고 좌(左)도 아닌 사람을 일컫는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한 남자가 남군과 북군의 경계선상에 살고 있었다. 그는 남군이 지나가면 남군을 응원했고, 북군이 지나가면 북군을 지지했다. 그래서 그는 옷도 바지는 남부 연합군의 군복인 회색을 입었고, 윗도리는 북부 연합군의 푸른색을 입고 다녔다. 얼마 후, 이 지역에서 양군 간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그 남자는 자신의 옷 덕분에 자신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전쟁터를 어슬렁거렸다. 그런데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남군은 그의 윗도리 색깔을 향하여 총을 쏘았고, 북군은 그의 회색 바지를 향하여 총을 쏘았던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경계인은 중용(中庸)의 의미가 아니다. 중용이란 ‘가급적 극단적인 것을 피해 무리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 나가라’는 지혜가 담긴 삶의 철학이지만, 경계인은 기회주의자로 봐도 무방하다.
한 쪽 발은 세상에, 한 쪽 발은 교회에 걸치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은 버림을 당한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6)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신앙은 중용도, 중도도 없다. 모 아니면 도이고, 뜨겁던지 차든지 해야 한다.
아합 왕 시절, 이세벨을 통해 들어온 온갖 우상이 판을 칠 때에 선지자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누가 섬기는 신이 참 하나님인지 대결을 했다. 이 때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갈멜산에 올라가 구경을 하는데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 편에 선 것도 아니고 바알신 편에 선 것도 아니고 두 가운데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이를 보고 엘리야가 호통을 쳤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18:21).
신앙에 양다리 걸치지 마라. 이중간첩의 최후가 좋지 않듯 그런 자의 결국은 지옥이다. 다니엘처럼, 아벳느고와 사드락, 메삭처럼 확실한 신앙인이 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