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940호 목차 › 객원컬럼

일편단심(一片丹心)

940호 · 2018-03-04

초등학교 시절, 대학을 잠시 휴학하고 온 큰형이 한동안 집에 머문 적이 있다. 나하곤 띠 동갑인지라 말이 형이지 삼촌뻘이었다.

당시 건넌방 셋집 책꽂이에 안데르센 그림 동화집이 꽂혀있었는데, 어느 날 오후에 형이 그 동화책들을 보는 것 같았다. 많이 무료한가보다 했다. 그런데 형이 그 동화책 가운데 ‘인어공주’를 보았다며 눈물이 날만큼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오로지 왕자님만을 사랑하는 인어공주의 애절한 운명에 눈물이 나더라는 것이다. 형이 좀 한심하게 느껴졌다. 애들 동화나 보며 훌쩍거리다니.

그런데 내가 그 나이가 지나고 나니 동화라는 장르가 결코 애들이나 보는 것도 아니며, 설령 그렇다 쳐도 그 속에서 인어공주의 임을 향한 일편단심의 사랑을 가슴 저리게 공감한 형의 순수한 영혼이 느껴졌다.

안데르센은 동화적 판타지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그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육지의 왕자를 보고 사랑에 빠진 인어공주는 왕자와 인간으로 만나기 위해 마녀에게 목소리마저 뺏긴 채 벙어리가 되었다. 육신은 비늘을 벗고 인간의 다리를 얻어 걷게 되었지만, 걸을 때마다 온 몸을 찔러대는 고통도 견딜 수 있었지만, 왕자를 보고 만나고 만질 수 있어 행복했지만, 벙어리가 되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할 수 없었고 결국엔 왕자의 사랑도 얻지 못한다. 왕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으면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가족들의 애타는 비원을 뒤로 하고, 인어공주는 칼을 바다에 던져버린다. 그리고 공주는 그 아픈 사랑을 간직한 채 바다의 거품으로 사라진다. 왕자와는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인어공주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을 위해 자신을 버린다. 목소리를 잃어도, 걸을 때마다 칼로 찢기는 고통을 당해도, 사랑한다 말할 수 없어도 인어공주는 기꺼이 그 사랑을 선택한다. 죽음같이 강한 사랑을…. 마치 아가서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아8:6).

우리 인간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러했다.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길임을 알면서도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고, 수많은 인간들에게 배신당할 것을 아시면서도 피 흘리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셨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최고 경지의 사랑이다. 자식을 향한 어미의 철저한 희생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그 희생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사랑에 답해야 한다. 누가복음에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며 향유를 부은 여인처럼, 이전의 나를 온전히 내려놓고 전 영혼을 예수께 드리며 오직 그분을 향한 사랑으로 달려갈 수 있는가? 그 뜨거운 심장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 세상 명예, 재물, 목숨까지도, 그 무엇을 다 잃는다 해도, 죽음을 넘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일편단심의 사랑을….

Henry Han

940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지혜의 말씀
Cartoon
붕우칼럼
세상을 보는 창
성경에서 배운다
Edu S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