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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938호 · 2018-02-17
신앙논객

1800년대 말,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일입니다.

한 노부부가 하버드 대학교 총장실로 찾아왔습니다. 부인은 색이 바랜 낡은 옷을 입었고, 남편은 싸구려 정장 차림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행색을 본 총장의 비서는 그들이 하버드에 볼 일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노신사는 비서에게 총장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지만, 비서는 총장님이 지금 굉장히 바쁘다고 대답했습니다. 노부인은 총장님이 시간이 나실 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 말하고는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비서는 총장에게 그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고, 총장은 마지못해 그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노부부는 총장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 아들이 1년 동안 하버드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몹쓸 병으로 아들이 저희 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학교에 아들을 기념할 만한 건물을 남기고 싶습니다.”

노부부의 말을 들은 총장은 노부부의 소박한 옷차림을 훑어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버드를 다녔다가 죽은 사람들을 위해 일일이 동상을 세운다면 캠퍼스 전체가 공동묘지로 변할 테니까요. 건물 하나를 짓는 데 얼마가 드는지 아십니까? 우리 학교 건물은 모두 한 동 당 750만 달러가 넘는 것들입니다.” 총장의 거만한 대답을 들은 노부인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아내는 남편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750만 달러면 건물 하나를 지을 수 있다는데, 그럼 우린 아들을 위해 대학교를 세울 수 있겠네요!” 그렇게 하버드를 떠나 캘리포니아 주로 간 노부부는 그곳에 또 하나의 사립 명문인 스탠퍼드 대학교를 세워 죽은 아들을 기렸습니다. 이후로 하버드 대학 정문에는 이런 과오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글귀가 붙어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그 마음의 중심과 행동을 보십니다. 우리도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맙시다. 우리가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요, 우리가 대접한 낯선 손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일 수 있습니다.

신혁주 전도사

blessedmic@naver.com

아름다운 인생

내 삶의 주인(Throne of my life)

새해를 맞이하면서 가장 처음으로 다짐했던 것이 기도였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목표였다. ‘기도의 부족은 모든 것의 부족이다.’ 수없이 이 말씀을 들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내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내 삶의 왕좌(Throne of my life)에는 하나님이 주인되어있던 시간보다 내가 주인이었던 시간이 더 많았다.

중고등부 동계수련회 마지막 날, 한 명씩 나와서 1분씩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중 한 학생이 2017년 한 해 동안 매일 3시간씩 기도했는데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해서 기도시간을 더 늘리겠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고, 더불어 도전이 되었다.

2018년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자’는 슬로건과 함께 범이 날개를 다는 축복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그와 함께 기도의 회복, 첫사랑의 회복을 강조하시며 매 예배 때마다 한 시간씩 기도를 시키신다. 다시 뜨겁게 기도를 하면서 영혼의 갈급함과 주변에서 여러 가지 일들과 막혔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간증들을 들을 수 있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는 말씀처럼 우선 영혼이 잘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해봐야 한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다. 한 해를 시작하며 어떤 기대와 소망을 품고 있는가? ‘가장 위대한 사람은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기도와 첫사랑의 회복을 통해 범이 날개를 다는 축복을 모두 누리시길 기도한다.

이은성

es2563@naver.com

참된 깨달음

일견을 키우세요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두 마리의 개를 키운다고 합니다. 이 두 마리의 개에게는 이름이 있는데, 하나는 ‘선입견’이고, 또 하나는 ‘편견’이라고 합니다.

어느 의과대학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매독에 걸려있고, 아내는 심한 폐결핵에 걸려있다. 이 가정에는 아이들이 넷 있는데 하나는 며칠 전에 병으로 죽었고, 남은 아이들도 결핵으로 누워 살아날 것 같지 않다. 이 부인은 현재 임신 중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러자 한 학생이 확신에 찬 큰 소리로 “낙태수술을 해야 합니다.” 그러자 교수는 “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네.” 이 불행한 상황에서 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베토벤입니다.

아버지는 매독에 걸려있고 4남매 가운데 하나는 이미 죽었고 셋은 결핵에 걸려 살 희망이 없는데 폐결핵 중증인 어머니는 또 다시 임신을 했습니다. 오늘의 의료적 판단으로는 낙태해야 한다고 결정 내릴지 모를 그 아이가 바로 음악의 성자 베토벤이었습니다.

인간은 사실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살아가는데, 사실 이것들은 자신만이 옳다고 여기는 교만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두 마리 개를 단번에 쫓아버리는 한 마리의 특별한 개가 있는데, 그 개의 이름은 바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개입니다.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뜻으로 직접 경험해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 개의 애칭은 ‘일견’이라고 하는데 일견을 잘 키우면 선입견과 편견을 조절하고 억누를 수 있다고 합니다.

거짓말보다 더 나쁜 말이 확인되지 않은 빈말이라고 했던가요? 그 빈말에 진실이 가려져 오해를 낳고, 그 오해가 또 다른 선입견과 편견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잃지 않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면 항상 일견을 키우면서 상대를 바르게 보는 혜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From Internet

9살짜리 소녀의 감동편지

29세 총각인 나는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고통사고로 중상을 입었고 시력을 잃게 되어 절망에 빠졌다. 시간이 흘러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면서 아홉 살 소녀를 만났다.

“아저씨…, 아저씨, 여긴 왜 왔어?”, “야… 꼬마야! 아저씨 귀찮으니까 저리 가서 놀아.”, “아저씨, 근데 아저씨 화내지 마. 여기 아픈 사람 많어~ 아저씨만 아픈 거 아니잖아요. 그러지 말고 나랑 친구해. 알았죠?”, “꼬마야…, 아저씨 혼자 있게 좀 내버려둘래?”, “아저씨, 그런데 아저씬 왜 이렇게 한숨만 푹 푹 셔?”, “정혜라고 했니? 너도 하루아침에 세상이 어두워졌다고 생각해봐라. 생각만 해도 무섭지? 그래서 아저씬 너무 무서워서 이렇게 숨을 크게 쉬는 거야.”, “근데 울 엄마가 그랬어. 병도 이쁜 맘 먹으면 낫는데. 내가 환자라고 생각하면 환자지만 환자라고 생각 안 하면 환자가 아니라고. 며칠 전에 그 침대 쓰던 언니가 하늘나라 갔어. 그 언니는 착한 아이라서 하늘에 별이 된다고 했어. 별이 되어서 어두운 밤에도 사람들을 무섭지 않게 환하게 해준다고.”, “음… 그래…,넌 무슨 병 때문에 왔는데?”, “음… 그건 비밀….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곧 나을 거라고 했어. 이젠 한 달 뒤면 더 이상 병원 올 필요 없다고.”, “그래? 다행이구나.”,

“아저씨, 그러니까 한 달 뒤면 나 보고 싶어도 못 보니까 이렇게 한숨만 쉬고 있지 말고 나랑 놀아줘, 아저씨….”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소녀의 한마디가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마치 밝은 태양이 음지를 비추듯….

그 후로 난 소녀와 단짝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어느새 소녀와 나는 병원에서 소문난 커플이 되었다. 소녀는 나의 눈이 되어 저녁마다 산책을 했고, 아홉 살 꼬마가 쓴다고 믿기에는 놀라운 어휘로 주위 사람, 풍경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근데 정혜는 꿈이 뭐야?”, “음… 나 아저씨랑 결혼하는 거.”, “에이… 정혜는 아저씨가 그렇게 좋아?”, “응, 그렇게 잘 생겼어?”, “음… 그러고 보니까 아저씨 되게 못생겼다.”

소녀와의 헤어짐은 빨리 찾아 왔다. 2주 후 나는 병원에서 퇴원했다. 소녀는 울면서 “아저씨, 나 퇴원할 때 되면 꼭 와야 돼, 알겠지? 응… 약속.”, “그래, 약속….”

우는 소녀를 볼 수는 없었지만 가녀린 새끼손가락에 고리를 걸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또 2주일이 지났다.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최호섭씨?”, “예. 제가 최호섭입니다.”, “축하합니다. 안구 기증이 들어왔어요.”, “진…진짜요? 감사합니다.”,

정말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다. 일주일 지난 후 난 이식 수술을 받고 3일 후에는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난 너무도 감사한 나머지 병원 측에 감사편지를 썼다. 그리고 나아가서 기증자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던 중 난 그만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기증자는 다름 아닌 정혜였던 것이다. 나중에 알았던 사실이지만 바로 내가 퇴원하고 일주일 뒤가 정혜의 수술일이었다. 소녀는 백혈병 말기 환자였던 것이다. 난 소녀를 한 번도 본적이 없었기에 소녀가 건강하다고 믿었는데….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난 하는 수 없이 소녀의 부모님이라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많이 좋아했어요.”, “예….”, “아이가 수술하는 날 많이 찾았는데….”

정혜의 어머니는 차마 말을 이어가질 못했다.

“정혜가 자기가 저 세상에 가면 꼭 눈을 아저씨 주고 싶다고…. 그리고 꼭 이 편지 아저씨에게 전해 달라고….”

그 또박 또박 적은 편지에는 아홉 살짜리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저씨! 나 정혜야. 음 이제 저기 수술실에 들어간다. 옛날에 옆 침대 언니도 거기에서 하늘로 갔는데…. 정혜도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아저씨, 내가 만일 하늘로 가면 나 아저씨 눈 할게. 그래서 영원히 아저씨랑 같이 살게. 아저씨랑 결혼은 못하니까….”

나의 눈에는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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