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에 부도내지 말라
예수께서는 정말 피하고 싶은 잔이었지만(막14:36)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셨다. 사도 베드로는 네로 황제의 핍박을 피해 로마를 떠나다 로마로 향하시는 주님을 보고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며 다시 로마로 들어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 사람이 부르는 환상을 보고(행16:9) 아시아로 가려던 뜻을 접고 유럽을 복음화 했다. 목사님은 “종은 종일뿐, 종은 의지가 없다. 돈 준다면 가지 않는다.”며 지구 반대편을 넘어 남미 선교에 매진하셨다. 이것이 바로 사명자의 자세다.
목사님은 지난 수요저녁예배에 임직하는 목사, 전도사, 그리고 제자들을 향해 ‘사명에 부도내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다.
“사명(使命)이란 부릴 사(使)에 목숨 명
(命), 곧 부리는 자에게 목숨을 내놓는 것을 말합니다. 내 뜻과 생각을 접고 주군의 뜻과 생각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군의 뜻을 거슬러 자기 생각과 뜻대로 고집할 때, 사명에 부도가 납니다. 사업하다 부도가 나면 옥에 가지요. 신앙에 부도가 나면, 사명에 부도가 나면 영원한 출구가 없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부도(不渡)란 아닐 부(不)에 건널 도(渡), 곧 건너서는 안 되는 다리입니다. 사업에 부도나지 않으려면 자금이 많아야 하듯, 신앙에, 사명에 부도나지 않으려면 성령에 충만해야 합니다. 순교도 각오해야 합니다. 오직 사명을 다하기 위함입니다.
직업과 사명은 다릅니다. 직업은 생활을 위해, 먹기 위해 일하는 것이나 사명은 직업 이상의 것입니다. 내가 항상 제자들이나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길은 아무나 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에 부도낼 바에야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쌔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찐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찌니라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 없어 내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하시니라’(눅14:25~35).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자의 길, 사명자의 길을 가는 사람이 각오해야 할 사항이며, 그 기준에 이르지 못할 거 같으면 사전에 그만두라는 권고입니다. 짠맛을 내지 못하는 소금, 곧 사명에 부도난 자들은 쓸데없어 버림받을 뿐이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소금은 액체, 기체, 고체 모두 다 짠맛을 냅니다. 갈려도 맛이 변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런 자가 되어야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사명은 각자 다릅니다. 손은 손, 발은 발, 각각 하는 일이 다릅니다. 따라서 자기가 맡은 사명에 충실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임직하는 자들이나 나의 제자들 모두가 맡은 사명에 충실하여 사명에 부도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나의 현재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확실히 인식하는 사람은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 근본을 망각하여 스스로 자고하다 넘어진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감사하는 사람, 목사님의 가르침에 감사하는 사람,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 신앙에, 사명에 부도내지 않는다. 깊이 유념할 일이다.
한은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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