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
교만은 아니었지만 나의 신앙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렸을 적 가족이 경험한 성령님의 치유하심으로 크리스천이 되었고, 유독 성령님의 역사가 강력하게 나타나는 교회에서, 목회자처럼 성도들을 기도로 훈련시키는 교회에서 줄곧 신앙생활을 해온 터라 타 교회에선 잘 하지 않는 방언도 잘하고 예수 이름으로 귀신도 쫓을 줄 알았기에 그런 자부심은 자연스러웠다.
해외에서 자그마한 한인 교회를 다닐 때였다. 아내와 함께 일을 하며 학업을 병행했던 시기여서 행복한 신혼이었지만 물질적으로 부족한 시기였다. 다들 어려운 이민 생활로 풍족한 사람들이 많진 않았지만 서로서로 물건을 주고받고 도움을 주며 살고 있었다. 우리 부부도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았다. 먹을 게 있으면 챙겨주고, 어디 놀러 가면 같이 데려가주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주고…. 그곳엔 어느 미혼모도 있었는데 교회에서 자그맣게 돌파티를 열어주었고, 또 부족한 상황 가운데 결혼하는 청년의 결혼식도 올려주며 자기 일처럼 같이 준비해주고 축하해주는 것을 보았다. 학비도 없는 와중에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 안 되겠다 싶어 금식기도를 하고 있던 어느 날, 그곳 교회 목사님이 과일 등 먹을 것을 잔뜩 가져다주신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깨닫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능력과는 다른 타인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것을 베푸는 행위에서 나는 것임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주시진 않으셨을까.
한국에 돌아온 후 시간이 많이 흐르고 지금은 모든 형편이 좋아졌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꼈던 그때를 생각하면 과연 지금의 나는 주변에 그러한 향기를 내고 있을까 부끄러워진다. 그래도 먼 훗날 주님 품에 안기게 되었을 때 내가 이 땅에서 머물렀던 자리에 조금이나마 그리스도의 향기가 남아있을 수 있기를 소망하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박찬영
cross35@hanmail.net
지인의 자살을 방지하려면
최근 유명 연예인의 자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지인에게 남긴 그의 유서에는 이길 수 없는 우울감과 무력감, 자살을 암시하는 말들이 있었다.
자살에 대한 생각, 감정, 행동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두 심각한 우울증 환자나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들은 어떤 특정한 시기에 고립감을 느끼며, 극심한 불행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보통의 사람일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예고나 징후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드물다. 10명 중 8명은 그들의 자살의도에 대한 경고 신호를 보낸다. 이 경고 신호는 ‘도움을 찾는 외침’이다. 그런 신호를 알고도 ‘설마 진짜로 죽기야 하겠어?’ 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
만약 지인이 간접적인 경우도 있지만, 직접 자살과 자살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당신이 자살에 대해 이야기해도 좋다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지인이 당신에게 자살에 관한 암시를 보여주거나 이야기를 한다면 첫째, 자신이 돌보고 있음을 보여 준다. “나는 네가 걱정된단다. 듣고 보니 정말 힘들었겠다.” 하고 공감하고 경청한다.
둘째, 자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질문한다. “너의 맘속에 죽음에 대한 생각이 있니?” 질문을 통해 지인이 느끼는 중요한 변화, 상실, 성취할 수 없는 욕구들이 있는지, 지인의 내면의 감정이 어떠한지 살핀다. 또한, 사용할 수 있는 치명적인 수단이나 도구를 가지고 있는지, 구체적인 자살 계획이 있는지 등 위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셋째, 도움을 준다. 특별히 죽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도와주어야 한다.
자살이 의심이 되면 그의 가족, 친지 등에게 알려야 한다. 가족들의 진심 어린 격려, 따뜻한 후원 등이 자살자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다. 부모형제, 친지 등 가족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지지는 최선의 자살 방패가 된다.
넷째, 자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떠오르지 않을 땐 주변의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관계기관에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약5:19~20).
Dr. 조희경
pearl9230@naver.com
사랑 받기와 사랑하기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이야기다. 그는 예수님을 존경하고 믿으나 교회는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당시 독일 교회에 크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는 오랜만에 교회에 갔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모두 ‘하나님, 저를 아니면 우리를 축복해주옵소서.’로만 끝났다고 한다. 아무리 들어봐도 ‘하나님 우리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저희가 세상에 나가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사랑을 실천하겠습니다.’ 하는 실천적 다짐이 없었다고 한다. 이 기도는 괴테가 가 본 모든 교회가 그랬다고 한다. 그 일로 그는 예수님은 믿으나 교회는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와 삶은 어떨까? 어린 아이와 같이 하나님께 달라고만 하고 있지는 않는가?
고린도전서 13장 11절에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내가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했다. 어린 아이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기밖에 모른다는 것이다. 받으려고만 하지 좀처럼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참으로 성숙한 사랑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만 생각하고 받으려고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오히려 베푸는 사랑인 것이다. 사랑의 대상을 자기 자신에서 다른 사람으로 옮기는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어떤가? 어린 아이처럼 내가 먼저 사랑하기보다는 내게 사랑을 주기를 바라고. 사랑의 양을 따지지 않는가. ‘나는 이렇게 하는데 상대방이 정말 느끼고 있을까? 알고 있을까? 혹시 내가 손해 보는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그 사람이 내게 이익이 되는가를 따져 그에 따라 사랑하지 않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아무런 조건 없이 끝까지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예수님처럼 어른스러운 사랑하기를 소원하며, 이웃을 사랑하되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해야한다.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 정신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13:4~7).
임택함 목사
cjcc1004@hanmail.net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근래 이사예배를 갔다가 믿음의 간증을 들었다.
25평 아파트에 살던 집사님. 34평이 매물로 나온 것을 보고 너무도 마음에 들어 앞뒤 생각 않고 믿음으로 계약을 해버렸다. 이제 살던 집을 빼야 하는데, 요즘 부동산 경기는 꽁꽁 얼어버렸고 은행권도 여의치 않다. 믿음으로 벌린 일, 믿음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법! 아침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집은 속히 팔릴지어다.” 명령하고, 저녁마다 애통하며 부르짖어 기도하길 한 달 만에 25평을 팔고 34평으로 들어왔단다.
진정 원하는 것이 있는가? 믿음으로 애통하며 부르짖어보라. 안 될 것이 없으며 하루만에도 홍해가 갈라진 것 같은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믿음은 그 시대 그 역사나 이 시대 이 역사나 변치 않는 자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신다. 야고보는 엘리야가 우리와 성정이 똑같다고 기록하고 있다. 엘리야가 하늘 문을 열었으면 우리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모세, 아브라함, 다윗이 했다면 우리도 동일하게 믿음을 들어 할 수 있다.
우리 목사님은 현 시대의 영적 상태를 개탄하시며 초대교회로 돌아갈 것을 강하게 주장하신다. 예수만을 의지하여 무엇이든 기도함으로 이루어나가는 초대 교회의 믿음은 곧 우리의 믿음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새로운 해에는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믿음으로 그리자. 그리고 하나님께 애통하며 부르짖어 기도하자.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우리의 능력에 맞는 일을 구하지 말고, 일에 맞는 능력을 하나님께 구해보자. 생각이 많으면 힘들고, 믿음과 기도가 많으면 쉬울 것이다.
김상욱 목사
ksw9669@hanmail.net
나를 축복하라
병자는 병든 자의 모습으로, 죄인은 죄진 자의 모습으로, 상한 자는 상한 자의 모습 그대로, 진실 되게 주님께 나아가 긍휼을 구하면 되는데 자꾸 감추고 숨긴다. 건강한 척, 의인인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겉을 꾸미고 체면으로 포장하며 살아간다.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바리새인처럼 말이다. ‘나는 흠이 없는 의인’이다. 그러나 세리는 ‘가슴을 치며 나는 불쌍한 죄인’임을 고백했다(눅18:10~14). 주님은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자가 아닌 눈물로 죄인임을 고백하는 세리가 더 의롭다고 말씀하셨다.
다윗의 위대함이 무엇인가? 다윗은 왕이었지만 선지자의 말씀이 떨어지는 그 자리에서 정직하게 납작 엎드려 죄인임을 자복한다. 밧세바를 취함으로 책망 받던 그 자리에 나단 선지자만 있었겠는가? 수많은 문무백관들도 있었을 것이고, 다윗의 자녀와 시종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용서함 받지 않으면 죽을 죄인의 모습, 상한 자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간다. 그런 다윗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13:22).
우리 목사님께서도 세계 복음화에 매진하며 몸을 돌보지 않은 결과로 간의 기능을 90% 상실했다고 하셨다. 그 때 목사님은 모든 집회일정을 뒤로 미룬 채 기도원으로 내려가셨다. 병고치고 귀신 쫓는 세계적인 목사님으로서 그런 결단을 내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 목사님이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계를 바라보았다고 해도 과연 그러셨을까? 아마도 감추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그때 무수한 유언비어가 일파만파로 떠돌아다녔다. “이초석 목사님, 죽을병 걸렸다.” 그러나 우리 목사님은 천문천답이 ‘예수’다. 지금은 예전보다 갑절이나 더 큰 영력과 더 강한 체력으로 더욱 강건하시다. 우리는 그런 목사님을 통해 살아있는 믿음을 소유한 의인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지향하며 싸워야할 지를 이젠 결정해야 한다. 의롭게 산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우리 주님이 이루어놓은 일을 우리가 믿음으로 누리며 사는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 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
2018년도에는 먼저 “하나님 제일중심으로 참 믿음을 소유하고, 녹을 제거하여 기도의 영력을 회복하고, 성령 충만을 힘입어 날마다 귀신을 쫓아내고, 권세 있는 새 교훈, 예수의 이름을 소유하여 하늘과 땅의 권세를 받아 주님을 높여드리는 김정옥 전도사가 되라!”고 ‘내’가 ‘나’를 축복한다!
김정옥 전도사
jcc011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