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이 없으면
여보게!
요즘 내가 접하고 있는 두 호텔을 보면서 든 생각을 말해보려 하네. 내 사무실이 있는 호텔은 얼마 전에 문을 닫았네. 사드 문제로 한중관계가 악화되어 중국인들의 관광이 줄어들다보니 적자가 계속되어 결국 호텔 문을 닫은 거라네.
그런데 말일세, 내가 다니는 또 하나의 호텔은 지금 이런 상황 속에서도 리모델링을 하는 등 분주히 호텔 업그레이드에 힘쓰고 있네. 아버지를 이어 아들이 운영권을 쥐면서 일어난 변화라네. 이 호텔이라고 중국 관광객이 줄어들지 않았겠나마는 이를 대처하는 모습이 내 사무실이 있는 호텔과는 사뭇 다르네.
과연 이 두 호텔의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해봤네. 결론은 의욕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더라고. 자고로 적보다 무서운 것은 무능한 지휘관인데, 여기서 무능하다는 것은 못 배운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욕이 없음을 뜻하지.
최선의 방어는 최대의 공격이라네. 그런데 ‘지금 적자니까’, ‘지금 힘드니까’ 하고 뒤로 물러나면 그 호텔처럼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거야. 위기는 위험한 기회가 아닌가. 이럴 때일수록 차고 나가야 하는 거라네. 위대한 업적은 커다란 위험을 감수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여보게!
의욕이 없는 병사의 어깨에 걸친 총은 적을 죽이는 무기가 아니라 그저 어깨를 누르고 있는 짐에 불과하다네. 그저 무겁고 거추장스러울 뿐이지. 모든 게 다 그렇다네. 의욕이 없으면 학교에 가는 것도 어쩔 수 없이 가는 것이고, 직장에 나가는 것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나가는 것밖에 안 되네.
그런데 의욕이란 꿈이 있을 때, 목표가 생길 때 불일 듯 일어나는 거라네. 바디매오가 눈을 뜨고야 말겠다는 꿈과 목표가 생기자 누가 뭐라고 하든, 밀치든 상관없이 의욕적으로 예수를 부르지 않았는가. 중풍병에 걸린 친구를 살리고야 말겠다는 목적이 있었기에 지붕을 뚫는 의욕이 발산된 거라네. 나 역시 세계를 교구화 하겠다는 꿈이 있었기에 환난과 핍박 중에도 의욕이 꺾이지 않은 걸세. 의욕은 넘지 못할 벽이 없네. 그러니 꿈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일하게나. 그래야 자네가 바라는 것들이 현실이 될 걸세.
朋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