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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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6호 목차 › 붕우칼럼

Yes or No

936호 · 2018-02-04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에 내가 아는 두 사람이 내정되었다. 한 사람은 요즘 말로 핫한 연예인이고, 한 사람은 비행거리가 많은 여성 중 한 명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전자는 이를 승낙했고, 후자는 거절했다. 승낙한 연예인의 성화 봉송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나는 동일한 사건에 다르게 대처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생각이 깊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스스로의 의지가 전혀 없는 로봇처럼 만들지 않으셨고, 동물처럼 본능에 따라 행동하도록 창조하지도 않으셨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자유의지란 큰 선물이기도 하지만,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쉽사리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아담에게는 선악과를 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의지가 있었는데, 아담은 먹는 쪽을 택했다. 그 결과는 에덴에서 추방되고, 삶에 가시덤불이 생겨났다. 반면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요구를 허락할 수도, 거절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 득죄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쪽을 택했다. 그 결과로 순탄치 않은 과정을 밟았지만 마침내 약관의 나이에 총리대신이 되었다.

어릴 때는 부모가 모든 일에 관여한다. ‘이것해라, 저것하면 안 된다’ 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장성하면 ‘네가 결정해라.’고 맡긴다. 이는 곧 ‘너를 믿는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를 아무렇게나 남용해서는 안 된다.

나는 가끔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믿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또한 강제로 끌려서가 아니라 우리의 의지로 자진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라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은 생사화복이 너에게 있다고 하셨다. 그것은 자유의지로 무엇을 선택했느냐의 결과일 것이다.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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