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식동원 보리차와 옥수수수염차
요즘 국산차가 대세이다. 오늘은 그 중 보리차와 옥수수수염차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보리는 대맥(大麥)이라고도 하고, 성질이 달고 서늘하며 독성이 없다. 주로 비장, 신장 쪽으로 효능이 있고, 소화기능을 도와주며, 갈증을 줄여주고, 설사나 소변이 시원치 않을 때 도움이 된다. 보리는 비타민 B1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당질대사에 도움을 주고, 베타글루칸이라는 식이섬유를 함유하여 장에서 혈당, 콜레스테롤 저하, 대장암 예방 등 유익한 기능을 한다.
소화가 안 되고 눕고만 싶을 때, 보리차는 소화를 도와 식욕을 증진시키며 피로를 없애준다. 또한 보리로 만든 엿기름도 소화가 잘 안될 때 도움을 주며, 가스가 많이 찰 때는 귤껍질차(진피차)와 함께 보리차를 같이 복용하면 도움이 된다. 수유 시 젖을 땔 때 엿기름의 윗물을 차처럼 마시면 효과를 볼 수 있다.
간식으로 자주 먹는 옥수수는 성질이 달고 독성이 없으며, 위장, 대장, 신장으로 영양을 공급해주고, 소화가 잘 안되거나 소변이 덜 시원하거나 신염, 고지혈증, 고혈압, 간암, 피부암, 담낭염, 간염 등에 도움이 된다. 소화력이 너무 약한 경우에는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 옥수수는 항산화 기능이 매우 강한 항암성분을 가지고 있어서 백혈병, 간암, 피부암에 현저한 항암 작용을 나타내고, 발암 물질의 형성을 억제한다. 치매 증상의 예방 및 치료 시에도 옥수수와 밀기울을 주식으로 하면 좋다. 옥수수기름은 불포화지방산을 함유하고 있어서 콜레스테롤의 흡수를 억제시키며, 혈액의 지질농도를 저하시켜 고혈압, 관상동맥경화증 방지에 도움을 준다. 고혈압과 고지혈증에 옥수수를 볶아서 차로 마시면 도움이 된다.
옥수수에 붙어있는 옥수수수염은 성질이 달고 담담한 맛을 가지며, 소변을 시원하게 하고, 담낭의 순환에 도움을 주어 담즙분비를 촉진시키며,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서 고혈압, 담낭염, 당뇨병, 혈압, 코피에 활용된다. 현대인의 만성 고질병의 예방치료와 다이어트 식품으로 활용될 수 있다.
보리차와 옥수수수염차는 소화를 잘 시켜주고, 소변을 시원하게 하는 효과는 비슷하다. 그런데 갈증이 심하게 나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는 보리차가 갈증을 줄이고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효능이 있고, 육식을 먹은 후에 소화를 편하게 하거나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한다면 평상시 옥수수수염차가 도움이 된다.
쉽게 접할 수 있는 것 중에도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이 많다. 잘 활용하여 건강한 삶을 유지하길 바란다.
Dr. 설재현
kseolmed@hanmail.net
겸손하지 말라
믿음은 나름 강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은 다소 부족했던 학생시절,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 당장 죽는다면 천국에 갈 수 있느냐고. 또 사후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예수님께서 “네 생각엔 네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으냐?” 라고 물어보시면 뭐라 대답할거냐고.
‘나는 죄인이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보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나름 겸손의 답변을 했다. 자신이 의인임을 감사하는 바리새인과 자신이 죄인임을 한탄하며 은혜를 구하는 세리 중에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는 바리새인이 아닌 세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걸 들은 바 있어서다(눅18:11~14). 그러나 나중에 깨닫게 된 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은혜를 구하는 마음의 자세이지 심판대 앞의 자세는 아니라는 것이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 하셨다(마11:12). 그렇다. 크리스천으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구원의 믿음은 겸손이 아닌 당당함이다.
하나님께서는 피 흘림이 있어야 죄 사함이 있다는 법을 세우셨다. 그래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보혈을 흘리게 하셨다. 바로 이 보혈을 믿고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아 의인이 되고,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알고 믿는 것이 크리스천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구원의 믿음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심판대에서 말씀하신다. “나는 전지전능하기에 네가 땅에서 지은 모든 죄들을 낱낱이 알고 있다. 마음으로만 미워해도 살인이고, 음욕만 품어도 간음이라 했는데, 그래도 네 생각엔 네가 천국에 갈 수 있을 것 같으냐?” 그 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알게 모르게 많은 죄를 지었을지라도 예수님의 보혈로 모든 죄를 사함 받았기에 저는 반드시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라고.
“네 생각엔 네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으냐?”
당신의 답변은 무엇인가?
박찬영
cross35@hanmail.net
분명한 목표를 세워라
중요한 시험을 앞둔 어떤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시험 날 지각을 하는 바람에 시험조차 보지 못하였다. 왜 늦었냐고 묻는 선생님께 그 학생은 학교 가는 길에 500원짜리 동전이 떨어져있어서 주우려고 했는데, 마침 동전을 잃어버린 사람이 동전을 찾고 있는 중이어서 같이 찾아주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동전을 가지려고 발로 밟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다가 지각을 하게 되었다는 말에 선생님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 고작 500원짜리 동전 때문에 중요한 시험을 놓친 것이었다.
이 바보 같은 학생의 이야기가 웃길지도 모르지만 이 이야기는 곧 너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삶에 목표가 없다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 중요한 목표가 무엇인지 정하지 않았기에 엉뚱한 곳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목표를 정해야 한다. 목표를 정할 때는 그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일대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목표를 계획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2배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3%의 학생만이 구체적인 목표를 글로 적었는데, 그 학생들은 나머지 97%의 학생들보다 평균 10배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다시 시작되는 2018년에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달리고 노력하여 꼭 나의 것으로 만들었으면 한다. 우리의 의지는 나약하지만, 하나님과 함께한다면 어떤 목표든 이룰 수 있다.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해보자.
김성일
cre8tor@naver.com
예수의 이름으로!
1977년 파나마에서 열린 세계프로복싱 타이틀전에서 우리나라의 홍수환 선수가 당시 11전 11승 11KO의 전적을 가진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승리했다. 그것도 4전 5기, 네 번 연속 넉 다운되고 다섯 번째 일어나 상대를 KO시킨 대역전극으로 말이다. 계속해서 맞고 넘어졌어도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 끝내 승리를 거머쥔 이 경기에 대한민국은 열광했다. 당시 세계복싱협회(WBC)는 다운당해도 당사자가 싸울 의사를 표시하면 계속 경기하게 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는데, 홍 선수는 쓰러질 때마다 다시 싸울 의사를 표시하여 경기를 지속했다고 한다.
살면서 쓰러지고 넘어졌다고 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넘어진 후에 다시 일어날 의사 표시를 하지 않고 자포자기하며, 의기소침하여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지곤 한다. 예수님을 은화 삼십 냥에 팔아넘긴 것을 뒤늦게 후회한 가룟 유다가 자책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것처럼. 그러나 행위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은 그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의롭다 여기신 하나님은 우리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기를 원하신다(잠24:16).
다윗도 그러한 사람 중의 하나다. 충성스런 부하 우리아의 아내를 얻고자 하는 탐욕에 눈이 멀어 의도적으로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하고, 그 아내를 취한 다윗의 행위 자체는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무서운 책망을 들은 그가 담대하게 통회 자복하여 밤새 침상을 적시는 회개를 하였기에, 끝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았나? 실수하고 넘어졌는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 범죄하며 습관적으로 넘어지는 것을 용인해서는 안 되지만, 좌절하고 두렵게 하며 포기하게 만드는 마귀의 계략에 넘어갈 필요도 없다. 하나님께 붙들린 80살 노인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영도자가 되고 그의 지팡이가 홍해를 가르는 도구가 된 것처럼, 하나님께 붙들리면 내 메마른 영혼육과 환경에도 반드시 생명은 차오르게 되어 있다.
그러니 담대히 일어나라.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우리 구주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일어나라!
이국진
joyful_jina@hanmail.net
고정관념을 깨자
마차의 바퀴는 맨 처음 나무로 되어 있었다. 나무로 되어 있다 보니 쉽게 닳았다. 그래서 닳지 않는 쇠로 만들었다. 쇠로 만드니 닳지 않아 좋은데 문제는 승차감이었다. 마차를 타면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 여러 생각 끝에 길에 고무를 깔아보니 엉덩이도 아프지 않고 너무 좋았다. 문제는 길마다 고무로 까는 일이었다. 비용은 물론이고 노동력도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그때 어떤 사람이 말했다. “길바닥하고 바퀴를 서로 바꾸어보면 어떨까? 길에 고무를 깔지 말고 바퀴를 고무로 만들면 같은 효과가 아닐까?”
그러나 다들 “에이, 그건 말도 안 돼. 단단한 쇠바퀴도 차의 무게를 견디기 힘든데, 고무는 무거운 것을 올려놓기에는 너무 물렁물렁해서 적합하지 않아. 그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야!” 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고무 속에 바람을 넣은 타이어를 개발했다.
도전하지 않는 사람은 실패할 확률은 없다. 그러나 더불어 도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미래도 없다. 도전할 때 많이 듣게 되는 말은 ‘그건 불가능해.’이다. 정말 사람들 말처럼 불가능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에디슨의 말처럼 도전한 자는 적어도 실패하지 않는 한 가지 방법을 더 터득한 것이니 도전이 결코 무모하다 말할 수 없다.
젊은이들이여! 세상의 중요한 업적 중 대다수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한 사람들이 이룬 것이다. 길이 보이지 않아야 도전이지 않겠는가. 2018년도 도전하는 자가 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