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있으면 원인이 있다(눅4:31~44)
지난 주 제가 독감에 걸려 억수로 고생했습니다. 사우나에서 냉탕에 있다가 바로 이발을 하러 나간 것이 문제였습니다. 냉탕 후 온탕에서 몸을 충분히 데웠어야 하는데 사우나 내의 이발소인지라 이발사 아저씨가 부르니 그냥 나간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독감 무섭습디다. 머리에서 지진이 나는 것 같이 아프고 기침에 신열이 올라 끙끙 앓았습니다. 그런데 토요일에 주례가 있어 주례하다 기침하면 낭패인지라 기침 안 나오게만 기도했습니다. 기도한 대로 주례 중에는 기침이 멈췄는데, 주례가 끝나니 바로 기침이 나왔습니다. ‘기도한 대로구나’ 라는 체험을 했는데, 문제는 다음 날이 주일 아닙니까? 이 상태로 어떻게 설교를 하나 하고 밤새 기도하다 아침이 되어서야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니, 귀신 쫓는다는 목사가 왜 귀신을 안 쫓았지? 성도들에게는 귀신을 쫓으라고 하면서 왜 나는 이 감기 귀신을 안 쫓은 거야?’ 깨닫고는 바로 거울을 보고 귀신을 쫓았습니다. 그랬더니 몸이 가뿐해져서 설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병의 원인은 다 귀신입니다. “아이고 목사님, 감기가 무슨 귀신이에요? 감기는 유행성 바이러스이죠. 귀신 귀신 하지 마세요.” 하십니까? 아닙니다. 다 귀신입니다. 누가복음 4장에 보면 베드로의 장모가 중한 열병이 걸려 앓고 있을 때 예수님이 열병을 꾸짖으시니 병이 떠나고 그가 일어나 예수님의 수종을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병이 감기몸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병을 꾸짖었다고 했습니다. 꾸짖으면 나가는 어떤 인격체가 병을 일으켰다는 말입니다. 그 인격체가 바로 귀신입니다.
두 해 전쯤 설날에 어머니 댁을 갔는데, 어머니가 감기가 심해 누워계셨습니다. 세배도 못 받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았더니 바로 일어나 세배를 받으시고 식사도 같이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픈 것은 다 귀신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4장에 “해 질 적에 각색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눅4:40~41)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사인 누가가 볼 때는 각색병에 걸린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으로 묘사했는데, 같은 장면을 마태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마8:16). 마태의 표현이 옳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각색병을 다 귀신을 쫓아 치료하셨기 때문입니다. 각색병이지만, 원인은 다 같은 귀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곧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라는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쇠갈고리가 달린 채찍에 맞아 온 몸이 갈기갈기 찢기신 것은 우리의 병 때문입니다. ‘내가 대신 아플 테니 너희는 아프지 말고 잘 살라’고 당신이 찢긴 겁니다. 그런데 왜 아픕니까? 바로 마귀의 지령을 받은 그의 졸개 귀신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아프게 하는 겁니다.
여러분, 각색병, 즉 우습게 여기는 감기부터 불치병까지 모든 병은 귀신이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소경이 된 것도(마9), 간질도(마17), 정신병도(막1), 중풍병도(눅13), 소경도(마12) 귀신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의 처방전, 치료법은 딱 하나, 예수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처럼 귀신을 쫓고 병을 고쳤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바로 예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행5:12~16).
이렇듯 예수 이름으로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니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관원들이 두려워 베드로와 요한을 옥에 가두고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행4:18)고 명한 것입니다. 그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요.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의 이름’이 무엇이고, 그 이름의 권세가 무엇이기에 그럴까요?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을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습니다(마1:21). 그런데 성경은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요17:11) 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이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이 ‘예수’라는 것입니다. 곧 예수라는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 앞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 그리고 땅 아래의 것들이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빌2:9~10).
그런데 예수께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셨고, 그 이름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셨습니다(요14:26). 이는성령의 이름도 ‘예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천하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인간을 지으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주셨고(요1:12),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는데, 그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행1:8). 그래서 성령을 받은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과 집사들이 나가 예수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제가 귀신을 쫓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며, 각색 병을 고치는 것은 이초석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주의 종만 예수 이름의 능력이 나타날까요? 아닙니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즉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은 자는 예수 이름의 권세를 소유하여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낫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성령 충만해야 귀신이 나갑니다. 성령 충만하려면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총은 있으나 실탄이 없는 격이요, 혹은 총과 실탄도 있으나 총구가 녹슬어 총이 나가지 못함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이 찌뿌둥하걸랑 거울을 보고 내어 쫓으세요. 머리가 띵해도, 다리가 아파도 귀신을 내어 쫓으세요. 그러면 하품이 나든, 눈물이 나든, 방귀가 나오든 할 겁니다. 더 나아가 암도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면 나갑니다. ‘암은 안 될 거야.’ 생각하면 안 나갑니다. 그런 생각을 주는 것도 귀신입니다. 덩치가 큰 곰이 총 한 방에 안 나간다고 가만있으면 어설피 맞은 곰에 당합니다. 계속 쏘면 곰도 쓰러지는 겁니다.
또 일이 꼬여도 귀신을 쫓고, 집이 안 팔려도 귀신을 쫓으세요. 불안한 마음이 들어도, 괜히 마음이 우울해도 귀신의 짓이니 내어 쫓으세요. 당신의 믿음이 문제이지 예수 이름 앞에 안 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믿음이 약한 자들이 병원에 가는 것을 나무라서는 안 됩니다. 병원 가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다만 믿음의 분량일 뿐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단의 정체성은 분명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이름이 주신 능력으로 항상 귀신을 내어 쫓아 이 땅에서도 천국생활을 합시다. 할렐루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百戰百勝)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