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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신선한 영혼의 양식

927호 · 2017-12-02
겨자씨만한 믿음

얼마 전 가족들과 마트에서 산 다양한 해산물과 회를 맛있게 먹고 집으로 왔다. 잘 때 즈음 아내가 속이 좋지 않다고 하더니 화장실에 가서 새벽까지 구토를 하면서 들락날락했었다. 나 역시 다음날부터 상태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도, 아내도 일주일가량을 회복이 되지 않아 고생하였다. 처음 걸려본 노로 바이러스는 굉장히 불편한 병이었다.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하고 속이 좋지 않기 때문에 먹을 것도 가려서 먹어야 했다. 앞으로는 신선한 음식을 먹고 날 것은 잘 익혀서 먹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리고는 얼핏 ‘몸의 건강을 위하여 음식에 신경을 쓰는데,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육체의 건강을 위해 먹는 것을 신경 쓰는 사람은 많지만 영혼의 건강을 위해 영혼을 위한 양식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보거나 듣는 경험은 정신에 작용하기 때문에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을지에 대해서도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인데 말이다. 자극적인 음식만 좋아하면 몸에 병이 생기는 것처럼 자극적인 것만 보고 듣는다면 영혼에도 병이 생기기 마련이다.

신선한 음식이 몸에 좋듯이 매일의 신선한 말씀은 영혼에 좋다. 좋지 않은 음식을 먹고 탈이 났지만 덕분에 영혼이 먹는 신선한 양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스스로의 상태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말씀과 기도는 영혼이 먹는 양식이다. 주님께서도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눅21:36)고 말씀하셨다. ‘오늘은 무얼 먹지?’ 라는 질문보다 영혼에게 신선한 양식을 주고 있는지 먼저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김성일

cre8tor@naver.com

신앙논객

예수 이름이면 합격!

얼마 전 수능고사가 전국적으로 치러졌습니다. 이 수능 고사의 정식 명칭은 ‘대학수학능력시험’입니다. 이 말은 곧 대학(大學)에서 수학(修學)할 수 있는 능력

(能力)이 있는지,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것보다 더 크고 전문적인 학문을 익히고 배울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를 검증하는 것입니다.

꼭 수능시험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 가운데서 접하는 다른 자격시험들도 마찬가지로 얼마나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그 일을 수행할만한 자격이 되는지를 검증합니다.

이번 수능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만약 ‘천국 시민 능력시험’이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 자격시험’, ‘예수 제자 검정시험’이 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의 힘과 능력과 지식으로 이 시험들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능력이 있고 자격이 되어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자격 없는 자들을 하나님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빚으시고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지요.성경은 결단코 아브라함이나 요셉, 모세나 다윗, 베드로와 바울 같은 사람의 위대함을 자랑하지 않고 그들을 인도하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위대한 사람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위대한 결단이 위대한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모두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보혈과 그 은혜로 죄 사함을 얻었습니다. 천국 시민,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의 제자의 능력과 자격을 묻는 시험지에 자기 이름을 쓰고 스스로 문제를 풀려 하면 그 결과는 100% 불합격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을 모셔 들이고, 시험지에 우리 이름 대신 담대하게 ‘예수 이름’을 쓴다면 우리는 넉넉하게 그 시험들을 통과할 것입니다. 결과 발표가 있는 그 날, 우리 모두 ‘예수 이름’으로 당당하게 합격의 기쁨을 누립시다.

신혁주 전도사

blessedmic@naver.com

참된 깨달음

위기는 기회다

어느 날 부터인가 체력이 고갈되면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조차도 귀찮아졌습니다. “그래. 나에겐 쉼이 필요해. 너무 지나치게 달려왔어. 이젠 좀 쉬면서 천천히!” 열심히 일한 당신은 충분히 쉴 자격이 있다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한없이 깊은 쉼 속으로 빠져 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 생각에 비수처럼 스치는 한 마디, “병을 떠받들면 안 된다니까!” 늘 강조하시던 우리 목사님의 카랑카랑한 음성에 벌떡 일어나게 되었죠. 그러나 몸과 마음이 일치되지 않아 어느 날은 흰 개에게 또 어느 날은 검은 개에게 먹이를 주며 자신과 줄다리기를 하는 중 내 의지와 내 믿음에 복종치 못하는 무력한 스스로에게 좀 화가 났습니다.

나의 무력한 육신을 길들여 복종케 하려고 어느 날 설악산 대청봉 등반을 몇몇 친구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고단한 걸음의 묵직함을 몸으로 느끼며 채찍질하듯 정상을 정복하고, 오르던 길 따라 내려오며 놀라웠던 것은 ‘내 힘으론 오르지 못할 험한 길’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혼자는 갈 수 없는 주님만을 바라봐야갈 수 있는 그런 길 말입니다.

그 후 제 몸은 잘 길들여져 제게 복종을 잘합니다.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토너들은 대부분 무릎 뼈와 뼈 사이에서 뼈끼리 부딪치거나 긁히는 걸 막아주는 연골이 닳아 없어져 큰 고통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고통을 감내하며 계속 뛰는데 ‘사점’(Death Point)이라고 부르는 고통이 극에 달하는 순간을 견뎌내면 고통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계속 뛸 수 있게 된다고 하니 하나님의 작품인 인간의 설계도가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은 “당신은 해내지 못할 거야.” 라는 일을 해내는 것 이라고 합니다. 그 일을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이 해내야 되지 않을까요?

김정옥 전도사

jcc01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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