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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일꾼은 결과로 말한다(딤후2:1~21)

925호 · 2017-11-18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눅10:2).

33년 전, 목회를 처음 시작할 때 저는 이 말씀을 붙잡고 ‘저를 도와 함께 일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기도한대로 일 잘하는 일꾼들이 대거 우리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이 예수중심교회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업이든 교회든, 국가든 가정이든 경영을 하는데 있어서 최고의 동력은 누가 뭐라고 해도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기도하신 후에 사람을 구하셨으니, 바로 12제자입니다(막3:16~19).

여러분, 사람은 길러 쓰는 게 아닙니다. 골라 쓰는 겁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마13:47~48)는 말씀을 삶 속에 응용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그릇에 담을 만한 자, 즉 쓸 만한 일꾼은 어떤 자일까요? 첫째는 일머리를 아는 자입니다. ‘일머리를 안다’는 것은 어떤 일의 내용, 방법, 절차 따위의 중요한 줄거리를 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을 쫙 꿰뚫어본다는 것입니다.

막노동을 하는 현장에서 아직은 앳되어 보이는 아이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총명하여 일머리를 제대로 알았습니다. 처음 들어온 아이라 잔심부름이나 하는 처지였는데, 그 녀석은 윗사람이 ‘못!’ 하면 못 뿐만 아니라 망치까지 대령했습니다. 심지어 ‘담배’ 하면 담배와 성냥까지 가져갔고, 식당에서는 유리창을 조금 열어 환기까지 시켰습니다. 그런 그를 상사가 눈여겨봤을 터, 곧 정식직원으로 발령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일을 시켜보면 시키는 일도 못하는 사람이 있고, 꼭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도 있고, 하나를 시키면 관련된 일들을 쭉 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이 상사라면 어떤 사람을 쓰겠습니까?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몽해주고 관직에 올랐습니다. 요셉은 감투만 쓰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일머리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애굽을 풍요로운 강대국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일머리가 없었습니다. 그가 출애굽하여 대소사의 일들을 다 처리하느라 골머리를 썩고 있었습니다. 그 때 일머리를 아는 장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조언해줍니다. 그 후로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되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출18).

일머리를 아는 자를 ‘그 분야의 전문가’라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 전문가를 쓰면 일류가 될 수 있고, 선두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야에 전혀 문외한을 기용한다면 그것은 마치 지나가는 사람을 쓰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성경은 지적해줍니다(잠26:10).

또한 일꾼은 연장을 쓸 줄 아는 자입니다. 제가 어릴 때는 소가 논밭을 갈았습니다. 그 때 보면 일을 잘 하는 농부는 절대 소를 때리지 않고 ‘이랴 이랴~’ 하면서 물 흐르듯 소를 부리는 반면, 소를 못 다루는 농부는 애꿎게 소만 때리고, ‘이 놈의 소’ 하며 욕을 내뱉습니다.

기도원에서도 일을 할 때 보니까 연장을 잘 다루는 사람들이 확실히 일을 잘 합디다. 지게차나 트랙터를 몰고 일을 척척 해냅디다. 그래서 일 잘 하는 사람이 연장 탓을 하나봅니다.

교회 안에서 연장은 ‘은사’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행1:8). 그런데 이 막중한 임무를 연장 없이 하려고 하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에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받은 후에 나가라고 한 것입니다. 왜요? 연장 없이 나갔다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은 후에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는 다양한 은사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고전12:8~10).

제가 오늘날 세계 72개국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연장을 잘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와 지식의 말씀으로 사람을 감화시키고, 병 고치는 은사로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눈 먼 자를 보게 하며, 벙어리 된 자가 말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꼬부라진 것을 펴게 하며, ‘예수이름’으로 바람을 잠잠케 하고 비를 멈추며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성령의 능력을 행하는 자들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진정한 일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꾼은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자여야 합니다. 기업을 운영하든, 사업을 하든, 목회를 하든, 정치를 하든 거기는 다 전쟁터입니다. 승패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쟁터에 나가는 자가 가정에 얽매인다면 그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신경이 온통 가정에 가있으면 일에 몰두할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어느 버스회사의 사장은 가정문제가 있는 자들에겐 운전대를 맡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이가 속을 썩인다든지, 가정에 우환이 있다든지, 심지어 부부싸움을 했을 때도 자동차 키를 맡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음이 갈리어 사고내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회사는 사고율이 낮다고 합니다.

목사가, 전도사가 생활에 얽매인 자라면 성도를 살리기는커녕 성도에게 짐이나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아주 냉철하게 이 부분에 선을 긋습니다.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3~4).

그리고 일꾼은 충성된 자입니다. 충성이 무엇입니까? 가운데 중(中)에 마음 심(心)이 합해진 것이 충(忠)이니 곧 진심과 정성이요, 말씀 언(言)에 이룰 성(成)이 만나 성(誠)이니 역시 곧 진심과 정성을 뜻합니다. 나의 진실한 마음과 자세로 정성을 다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모든 일을 맡기십니다. 충성된 자는 절대 불만불평하지 않습니다. 물이 그릇을 탓하지 않듯 충성된 일꾼은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돈을 보고 일을 하는 자는 충성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을 보고 뛰는 자는 열과 성을 다할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두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이 이런 마인드를 국민에게 심어 오늘날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것입니다.

교회는 특성상 직분을 주는 것은 쉽지만 빼앗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장로나 권사, 집사, 조장이나 구역장을 세울 때는 사람을 오래 관찰하여 일꾼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도는 성도대로 시험이 들고, 교회에 누가 되고, 목사의 짐이 될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장로임직을 늦추는 이유입니다.

여러분, 일꾼은 결과로 말합니다. 선한 목자와 삯꾼 목자의 결과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침된 일꾼이 되십시오. 그리고 참된 일꾼을 두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이 윤택해지고, 풍요로워지며, 평안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종에게는 의지가 없다

오직 순종만 있을 뿐이다

당신은 교회의 디딤돌인가

아니면 교회의 걸림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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