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분명한 자만 인내할 수 있다
가을, 추수(秋收), 감사(感謝), 농부의 인내(忍耐)….
깊어가는 가을은 곧 겨울의 옷깃을 여미게 하겠지만,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에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언제가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다.
“열매를 따는 자는 씨를 뿌린 자가 아니라 열매를 딸 때까지 기다리는 자다.”
아무리 수고로 농사를 지으며 피땀을 쏟았다 하여도, 마지막까지 참고 기다리지 못하면 열매를 수확할 수 없다. 곧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그럼 누가 인내할 수 있는가? 누가 포기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바로 확고부동한 목적이 있는 사람이다. 인생의 분명한 목적이 있는 사람만이 인내할 수 있다. 분명한 목적이 있기에 그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디는 힘을 얻는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의 너무나도 뻔한 승부가 전혀 엉뚱한 결과를 낳은 이유가 무엇인가? 목적이 달랐기 때문이다. 거북이는 목표지점까지 그냥 전진해가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전부였기에 승부는 고사하고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일에만 집중했다. 승부 따윈 거북이의 머릿속에 없었을 것이다. 목표를 향한 직진(直進), 경주에 임한 거북이에게는 오직 이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토끼는 경주의 결과에 조금도 의심이 없었다. 거꾸로 가도 이기는 게임이요, 그냥 걸어가도, 아니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이상 달라질 수 없는 결과였다. 거북이랑 경주라니…. 기가 차고 코가 찰 노릇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천지개벽하는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거북이가 경주에 승리한 것이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실컷 자고 일어난 토끼가 승부의 결과를 알게 된 순간, 바로 이런 기분 아니었을까?
“나는 더디 갈지언정 뒤로 물러가진 않는다.”
목사님의 이 선언은 바로 목표를 향해 직진만 계속한 거북이의 철학 아닐까.
성도의 인내는 바로 이것이라 믿는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2).
바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핍박과 순교가 와도, 죽음과 환란이 기다려도,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 한 그 믿음으로 인내하고 인내하여 마침내 하나님께 옳다 인정하심을 받고 칭찬 받는 자, 진정 인내의 단 열매를 수확하여 넉넉히 천국에 들어가는 자이다.
목사님은 이제 일본 지바 집회를 시작으로 호주 시드니(Sydney) 집회, 기도원 산상집회 등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길을 다시 계속하신다. 건강관리 차원에서 잠시 속도를 늦췄던 것일 뿐, 본래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가시려는 것이다. 비록 느리고 더뎌보여도 결코 뒤로 물러갈 수 없는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구촌의 영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선교사역을 통해 세계를 예수중심으로 이끌고, 한 영혼이라도 더 천국으로 인도하여 그날에 주와 한 상에서 떡을 떼며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 열두 지파를 심판하는 천국왕권의 꿈이 목사님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
죽음 다음의 세상에 대한 확실한 목적이 있는 바에야 어찌 이 땅의 인내가 끝날 수 있을까. ‘비바람이 갈 길 막아도 천국에 이르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주의 길을 가겠다’는 목사님의 찬송시, ‘나는 가리라’는 천성의 목표를 향한 직진 의지(意志)의 절절한 고백이다.
마지막까지 이겨야 한다. 인내해야 한다.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끝까지 인내하며 지키는 자만이 천국을 유업으로 상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 길을 나선 이유 아닌가.
한은택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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