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친절
하와이 어학연수를 마친 후, 하와이의 이웃 섬인 빅아일랜드를 여행했습니다. 제주도의 8배 정도 되는 큰 섬이지만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는지라 차를 렌트해야 되는 상황이 되었는데요. 한국에서 오기로 한 친구는 면허가 없고, 저는 반년 전에 자동차 연수를 다섯 번 받았던 게 제 인생 운전경력의전부인지라 겁이 났지만 다른 방도가 없어 제가 운전대를 잡기로 결정했습니다.
미리 운전 연습도 하고 섬도 둘러볼 겸 친구가 오기 7시간 전에 먼저 빅아일랜드로 가서 예약해뒀던 차를 빌리려는데 무슨 영문인지 제 신용카드에 자꾸 에러가 생겨서 내일 다시 오라는 겁니다. 결국 차를 못 빌리는 상황이 되었지요. 그 막막한 와중에도 배는 고프고 공항에서 서성거리며 7시간을 보낼 수가 없어 일단은 근처 식당에 가기로 했습니다. 구글맵에 검색해보니 가장 가까운 식당조차 걸어서 45분 정도 떨어진 곳이더군요. 할 수 없이 제 몸짓보다 두세 배 큰 배낭을 메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을 삼분의 일정도 걸었을 즈음, 갑자기 어떤 자동차 한 대가 비상 깜박이를 켜고 제 앞 쪽으로 멈춰 섰습니다. 운전석에는 항공사 유니폼을 입은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앉아계셨고 옆자리에 놓인 자기 가방을 뒷좌석으로 치우며 저보고 타라고 하더라고요. 작은 체구에 큰 배낭을 메고 걷는 게 안쓰러우셨다고요. 덕분에 식당까지 편히 갈 수 있었고 기대치 못한 친절에 마음이 금세 풍족해졌습니다.
다음 날, 다시 렌터카 회사로 갔습니다. 다행히 신용카드가 되었는데 문제는 남아있는 차가 커다란 지프차 딱 한대뿐인 겁니다. 중형차도 버거운 쌩 초보운전자인 제가 외국 땅에서 지프차라니요. 하지만 자동차 없이는 어디를 갈 수가 없고 빅아일랜드 사람들은 친절해서 괜찮을 거라는 렌터카 직원의 응원에 힘입어 기도를 하고 시동을 걸고 출발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도로 운전은 적응이 제법 됐는데 난관은 주차였습니다. 그 덩치 큰 차를 주차하다가 결국 옆 차를 박고 말았지요. 차 주인은 차 상태를 보더니 타이어에 부딪혀서 별 문제 아니라며 걱정말라고 했고, 제가 초보운전자라고 말하자 저 대신 주차를 해주었습니다. 찡그림 하나 없이 환한 웃음을 하고서요. 놀라운 건, 주차를 못해 힘들어하던 저를 위해 순순히 자신의 차에서 내려 대신 주차를 해준 고마운 분이 그 한 사람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와이에 반년 넘게 지내면서 가장 좋은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이라고 대답할 겁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작은 친절, 배려를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들, 눈이 마주치면 낯선 사람에게도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을 만난 것처럼 환하게 웃으면 인사하는 사람들. 한국에 살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낸 그 작은 친절이 얼마나 좋던지요.
그동안 저는 낯선 사람에겐 친절도 웃음도 인색한 편이었습니다. 외국인이 길을 물어오면 당황해서 무시한 채 지나치고, 바쁘다는 핑계로 도와야할 길을 피해 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 많은 친절을 받다 보니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마음을 풍족하게 만드는지 알게 되었지요.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뜻대로 이제 저도 작은 친절을 베풀어보려고 합니다. 어쩌면 그 사소한 친절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으니까요.
신은혜
dopal0203@naver.com
사나 죽으나
세계 기독교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 존 웨슬리와 드와이트 무디의 생애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존 웨슬리는 18세기 초 영국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두 분이 다 목회자인 집안에서 태어났고, 20대 중반에 명문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교수가 된 엘리트였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신학 공부와 경건 운동에 매진하였고, 마침내 30대 초반에 청빈한 모라비안 교도들의 삶을 통해 회심을 경험한 뒤에는 영국 전역을 다니며 복음 전파와 사회 운동을 전개하며 감리교단의 창시자가 됩니다.
반면 19세기에 미국의 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드와이트 무디는 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무디는 17살 때 그리스도인 삼촌의 구두 가게에서 수선공으로 일하면서 교회의 주일학교에 출석하게 되었고, 1년 만에 주일학교 교사와의 대화를 통해 회심하여 미국 전역을 뒤엎는 복음 전도자가 됩니다.
책을 읽은 후 달라도 너무 다른 그들의 삶 가운데서, 과연 무엇이 그들을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 때 떠오르는 말씀 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7~8). 모든 것이 달랐지만 하나님을 만난 뒤 그들의 삶은 더 이상 그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어가는 데에 그들의 일생을 바친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쳤던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령이 임한 뒤에는 핍박과 순교를 무릅쓰고 일생을 헌신한 초대 교회의 사도들이 되었고, 총회장 목사님도 예수님을 직접 만난 뒤에는 부귀영화를 뒤로 하고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으니까요.
물은 자신이 담긴 그릇을 탓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만나고 그 분이 내 삶의 주인이 되셨다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랐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 사는 것이니까요.
신혁주 전도사
blessedmic@naver.com
이기는 습관
몇 달 전, 크로스핏이라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대처할 수 있는 신체기능을 만드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이 운동은 힘들기로 소문난 운동입니다. 크로스핏을 경험한 여러 지인의 권유로 시작한 운동인데, 평소 운동량이 많지 않았던 저는 첫날부터 좌절을 맛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활 근력밖에 없던 몸이었으니 팔굽혀펴기를 세 번도 소화해내지 못했으니까요. 그렇게 하루, 이틀 꾸준함을 무기로 더디지만 포기하지 않고 운동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번 하기도 그렇게 어렵던 팔굽혀펴기가 한 달이 되니 열 번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몇 달이 지난 지금은 스무 번을 거뜬히 해냅니다. 운동을 통해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다보면 결국 성취하게 되는 ‘이기는 습관’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매일 세상을 살며 여러 번 무너집니다. 특별히, 크리스천다운 삶을 살아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것들, 멀리하라고 하신 것들로부터 분리된 삶을 살고 마음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때때로 죄를 짓고, 죄에 걸려 넘어집니다. 그렇지만, 우리 신앙도 ‘이기는 습관’을 가졌으면 합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자주 넘어지지만 매일 죄와 싸워 조금씩 더 이기려고 노력하다보면 예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기도로 죄를 이기는 습관’, ‘말씀으로 죄와 싸우는 습관’으로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우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라”(요일5:4).
김경현
kyunghyunjudy.kim@gmail.com
말(言)
프랑스의 휴양도시 니스의 한 카페에는 이런 가격표가 붙어있다고 합니다.
▶Coffee! 7 Euro.
▶Coffee Please! 4.25 Euro.
▶Hello, Coffee Please! 1.4 Euro.
이걸 우리말로 바꾸면 이렇게 됩니다.
▶‘커피~’ 라고 반말하는 사람에게는 1만원.
▶‘커피주세요’ 라고 주문하는 사람에게는 6천원.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주세요.’ 라고 예의바르고 상냥한 손님에게는 2천원.
이 기발한 가격표를 만든 사람은 이 카페주인이라네요. 손님들이 하도 종업원들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을 보고 이런 아이디어를 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푸줏간에서 고기를 파는 사람을 조금 하대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 시절 김선택이란 자가 푸줏간에서 고기를 팔았는데, 어느 날 한 사람이 고기를 사러 와서는
“어이, 개똥아. 고기 두 근만 다오.” 하며 명령하듯 말했습니다. 개똥이라 불린 김선택은 고기를 잘라 종이에 말아주었습니다. 바로 그 때 다른 사람이 또 고기를 사러 들어왔는데, 그 사람은 “김 서방, 고기 두 근 주시게나.” 라고 말했지요. 그러자 김선택은 “예.” 하고는 고기를 잘라 종이에 말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먼저 들어온 사람이 흘낏 보니 같은 두 근인데 자기 것보다 양도 많고 육질도 훨씬 좋아보였습니다. “야, 개똥아. 왜 내 거랑 차이가 나는 거야? 똑같은 두 근인데 왜 이리 달라?” 하고 소리를 지르자 김선택이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다를 수밖에요. 그건 개똥이가 준 것이고, 이건 김 서방이 자른 거니까요.”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닙니다.
말은 인품입니다. 자신의 인품을 높이느냐 땅에 떨어트리느냐는 당신의 세 치 혀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