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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려면 코드가 맞는 자와 일하라(행13:16~23)

923호 · 2017-11-04

성공하고 싶으십니까?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평안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코드가 잘 맞는 자와 일하십시오. 마음이 맞는 자와 동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대업을 꿈꾸십시오.

‘코드가 맞는다’는 것은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며 동지적 개념을 가진 것을 말합니다. 즉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의중이나 뜻이 잘 맞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의 크기나 방향이 맞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톱니바퀴의 크기가 맞을 때 기계가 잘 돌아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마음이 맞는 자와 일하셨음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이 마음에 맞지 않자 다른 이를 대신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삼상13:14). 그가 바로 다윗입니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행13:22). 하나님은 오로지 다윗이 우리아의 처를 범한 사실 하나 외에는 다 마음에 맞으셨기에(왕상15:5) 다윗의 혈통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는 거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의 제자 열둘을 세우실 때 그냥 세우신 것이 아니라 기도하신 후에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막3:13).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함께 거할 때의 일입니다. 그들 각자의 소유가 많아지다 보니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안 되겠다 생각한 아브라함은 롯에게 제안합니다.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창13:9). 잘한 겁니다. 절대 갈라서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협력과 융화로 갈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갈라서야 서로가 삽니다. 고름은 짜내야 하는 것이 이치고, 짜내야 나중에 대수술로 이어지지 않는 겁니다.

대사도인 사도 바울도 이런 이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출발에 앞서 생질인 마가를 데리고 가는 문제에 대해 서로 의견이 달랐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행15:2). 그래서 이 둘은 이렇게 결론을 지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바울은 실라와 함께 각각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떠나기로요(행15:37~41).

이건 누가 나쁘고, 누가 잘못했는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서로 의견이 다르고,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좋습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21:9)는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여인’ 대신에 ‘직원’이나 ‘동업자’를 넣어보세요. 감(感)이 올 겁니다. 다투면 멀리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이유는 서로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맞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엄청나게 빨리 갈 것입니다.

한 마라톤경기에서 우승을 한 사람에게 42.195km를 달릴 때 어느 코스에서 가장 힘들었냐고 묻자 우승자는 “마라톤 코스가 힘든 것이 아니라 신발 안에 모래 한 알이 들어갔는데 그것이 내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기록을 못 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신발 안에 모래알 하나,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그런 자가 단체 속에 있다면 그 단체는 그 사람으로 인하여 몸살을 앓을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12)는 말씀이 있습니다. 한 줄보다 삼겹 줄이 질깁니다. 그러나 삼겹이 그냥 있는 것보다 서로 꼬여서 하나가 될 때 더욱 질겨집니다. 마음과 뜻이 맞을 때 더욱 능력과 성과가 크다는 것입니다.

결혼도 그렇습니다. 학벌이나 배경, 외모만 보고 결혼했다가 이혼한 성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그러나 살다보면 성격이나 취향, 취미 등 공통분모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겁니다. 부모들도 마음에 맞는 자식과 살아야 편합니다. 꼭 장남하고 살아야 한다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버리고 딸이 편하면 딸하고 살고, 둘째 아들이 편하면 그 아들과 살면 됩니다. 자식들이 다들 불편하게 한다면 혼자 사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잠15:13).

잘 맞아야 하는 코드 중에 하나가 ‘신앙’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고후6:14~16).

신명기 22장에 보면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신22:10)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소와 나귀를 한 쟁기에 메어 끌게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인데요, 유대 율법에는 소와 나귀가 같은 멍에를 메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소와 나귀는 몸체의 크기가 다르고 힘의 크기도 다르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몸체와 힘이 적은 나귀가 고통을 받기 때문입니다. 합당한 멍에는 힘센 황소끼리 메는 것도 약한 나귀끼리 메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는 암수끼리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신자와의 동업이나 결혼, 모사나 대업을 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 자와 함께 하는 것은 소와 나귀가 함께 멍에를 메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어느 장로가 안 믿는 자와 동업을 한다고 해서 제가 말렸습니다. 듣고 안 듣고는 장로가 결정할 일이었지만, 저는 말씀대로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가 제 말대로 과감히 안 믿는 자와 손을 끊고 일을 시작했는데, 하나님이 얼마나 큰 축복해주셨는지 이루 말로 못할 정도입니다.

안 믿는 자와 일을 하고, 결혼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볼까요? 사울은 사무엘이 죽은 후 신접한 여인과 하나 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넘어졌습니다. 재산과 지혜가 여느 열왕들보다 컸던 솔로몬, 그런 그가 이방여인들을 취하고, 그로 인해 이방여인들이 섬기던 우상들이 들어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산당과 아세라 상을 제하는 등 종교개혁을 단행하던 여호사밧이 그의 아들을 아합의 딸과 정략결혼을 시켰습니다. 또한 정략결혼으로 아합과 동맹을 맺기도 한 그는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는 길르앗 라못을 공격하다 자신은 겨우 목숨만 건지는 사태에 이르고 맙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메었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럼 세상과 등 돌리고 살아야 하나요?” 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아닙니다. 신명기 7장 3~4절의 말씀이 답입니다.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찌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믿지 않는 자와 결혼, 사업, 동업을 막는 이유는 고난과 핍박 때문이 아니라 구원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물과 기름은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숯을 가까이 하면 숯검정이 묻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니 신앙과 사상, 뜻이 맞는 사람과 일을 하고 결혼을 하고, 동업을 하십시오. 동질성이 코드입니다. 할렐루야!

마음이 맞는 자는

우주와도 안 바꾼다

고름이 살 안 된다

아파도 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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